▲ 조용병 신한은행장

익숙한 사고 버리고 사물 낯설게 봐야 정답 구해
미래금융은 현재 디지털 모바일 솔루션보다 진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과 모바일이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20세기 어느 시절엔 집마다 한 대씩 있어도 많다고 말하던 전화가 이젠 사람마다 한 대씩 있을 정도로 많아졌고, 인공지능이 세계적인 프로 기사와 바둑을 두어 승리하는 등 지난 세기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변화는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산업 전체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기업의 길은 단순히 변화만을 이야기한다고 달성되는 것은 아니며, 또 그 변화의 방향과 목적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길이라는 점에서, 금융산업 종사자들은 멀고 험하다는 생각만 갖고 길을 떠나는 노마드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신한은행 조용병 행장이 최근 70여명의 임원 및 본부장들과 워크숍을 가지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강조하고 나섰는데, 이 자체가 절박한 심정의 외적 표현일 것이다.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처한 여건이 무척 어려운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한 조 행장은 “앞으로도 지속가능경영을 펼쳐 가기 위해 모든 면에서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 같은 조 행장의 주문은 마치 중세가 저물어가던 시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새로운 세상을 대비하기 위해 인문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메디치 가문의 시선과 유사하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기존의 가치로 사회현상을 충분히 해석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시선을 도입하는데 적극 나선다. 메디치는 이 과정에서 갈등하고 있던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의 타협을 이루는 피렌체 공의회를 유치하기도 했는데, 이 때 피렌체에 도입된 것이 비잔틴 교회에서 전승되어온 플라톤적 사유였다. 가톨릭 세계에선 사라졌던 플라톤의 저작들도 이 때 다시 이탈리아로 들어왔으며,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평면적 구도의 예술은 사람 중심의 과학적인 ‘새로운 시선’을 도입해 원근법을 통한 르네상스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존재한다. ‘새로운 시선’은 익숙한 기존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론과 물질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집착한다.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라는 꽃이 피는 과정이 그랬고, 근대를 여는 여명기에도 물질이나 이론의 등장이 새로운 세계를 펼친 것이 아니라 시선의 차이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익숙한 것은 변화하기 힘든 것들이다. 공자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는 매우 익숙한 대상에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발견한다. 낯선 대상에 대해 불편해하는 태도를 벗어나야 익숙한 것과 헤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익숙함에 집착한다.

조용병 행장이 말한 “완전히 다른 새로움”은 바로 이런 관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산업의 미래와 연결시켜 다시 말한다면, 조 행장의 ‘새로움’은 이미 적용하고 있는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 및 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과 모바일 기술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매체가 전부인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익숙한 것보다 그동안 무시해왔던 삐딱하게 생각하는 법에서 답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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