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사과와인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군. 왼쪽의 아이스와인이 대표 상품인 ‘추사’이며 가운데가 알코올 도수 40도의 브랜디 ‘추사’이다. 높은 도수임에도 3년간 숙성시켜 외국산 양주에 전혀 밀리지 않는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와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를 떠올리거나 칠레 와인 등을 떠올릴 것이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와인 만화를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대륙 와인이라든지 이탈리아 와인까지 폭넓게 와인을 섭렵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와인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생소하게 느낀다. 이유는 우리 고유의 술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와인을 유럽 중심으로 이해하다보니 우리 땅에서 나는 와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술품평회 등을 통해 술맛까지 입증 받은 우리 술의 새로운 식구가 된 것이 와인이기도 하다.

1987년부터 사과농사를 짓기 시작한 예산에 사과로 술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다. 술을 좀 아는 사람이면 흔히 사과술하면 ‘사이다’(청량음료가 아닌) 정도를 생각하겠지만 예산에서 처음으로 사과농사를 지은 ‘은성농원’의 괴짜 사위 정제민 부사장은 사과로 와인을 만들어 우리 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 사과와인과 브랜디를 생산하고 있는 예산사과와인의 정제민 부사장이 오크통에 넣어 숙성 중인 브랜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양조기술을 배운 정 부사장은 2000년대 초 귀국한 후 포도 와인에 도전한다. 물론 와인공방(다음카페 와인동호회)을 열어 와인 대중화 작업도 같이 전개한다. 하지만 국내 포도는 양조용 포도만큼 당분이 충분하지 않아, 제대로 된 와인을 빚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장인의 사과농장에서 와인페스티벌을 개최하며, 새로운 와인을 모색한다.

물론 와인페스티벌은 단순한 와인 즐기기가 아니라 와인 사업에 앞선 자락 깔기와 같은 인문학적 시도였다. 와인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매년 동호회 회원과 주한 외국인들이 참여해 풍성한 스토리가 축적되며, 서서히 예산 은성농원은 와인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 부사장은 2010년부터 사과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캐나다 퀘벡지역의 피너클 아이스 애플와인을 벤치마킹해서 그도 은성농원에서 자라는 후지사과를 최적의 시기에 수확해 아이스 애플와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축제에서 과실주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다. 머루·오미자와 달리 향이 짙지 않은 사과로 대상을 받는 것은 그만큼 그의 양조기술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도 그의 술 ‘추사’는 역시 과실주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추사 김정희의 고향, 그리고 가을에 수확한 사과로 만드는 이야기라는 추상성을 더해 ‘추사(秋史)’라고 이름붙인 그의 와인은 지난해 광명동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와인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스토리가 쌓이고, 술에 대한 높은 평가가 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술의 매출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는다고 한다. 처음 귀국해서 와인공방을 운영할 때의 생각은 10년쯤이면 우리 땅에서도 우리의 술이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술이 익는데 시간이 필요하듯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와인은 스토리가 있는 문화상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으로서 와인을 바라본다. 하지만 유럽의 와인은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이 아니다.”

양조할 수 있는 환경과 건물(사과농장과 양조장), 그리고 공방과 페스티벌 등을 운영하면서 일궈 논 스토리가 있지만 사람들은 와인을 평상시에 마시는 술로 생각하기보다 여행 중에 구입하거나 특별할 때에 주는 선물 정도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문화적 바탕 위에 우리 술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데 전력할 계획이란다. 아이스 애플와인 외에 붉은 빛이 도는 속이 붉은 사과(품종:레드 러브)를 이용한 와인도 개발 중이다. 물론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도 신경을 많이 쓰는 영역이기도 하다. 술 애호가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20도 안팎의 저렴한 증류 브랜디를 개발하고 시장을 노크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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