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적립금 규모가 적은 일반 서민들은 목돈이 필요한 경우 일시금으로 받아도 세금부담이 크지 않고, 노후를 위해 연금방식을 선택한다고 해도 월 소득금액이 미미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퇴직연금 적립금의 연금화 수령 의무를 폐지한 영국의 사례를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영국 세금 낮추자 너도나도 ‘일시금’ 수령

영국의 퇴직연금 수령방법은 크게 연금자유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연금자유화 이전 모든 가입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25% 이상은 종신연금 혹은 실적 배당형 연금(Drawdown) 방식으로 수령해야 했다. 하지만 연금자유화 이후 일시금 수령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Flexi-Access Drawdown(이하 FAD’)과 비결정형 연금펀드(이하 UFPLS) 등이 도입됐다.

FAD는 적립금을 연금형태로 수령하되 본인이 원할 경우 제한 없이 인출할 수 있으며 인출 시 종합과세되는 방식이다. UFPLS는 펀드로 분류되며 수시 인출이 가능하고 인출 시 인출금의 25%는 비과세, 나머지 75%는 종합과세 된다.

결과적으로 연금자유화 이전 94%에 달했던 종신연금 선택 비중은 연금자유화 이후 10% 대로 감소했다. 반면 연금자유화 이전 10% 이하이던 드로다운의 선택 비율은 연금자유화 이후 28%, 일시금 수령비율은 50%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퇴직연금의 적립금 규모는 퇴직연금 수령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3만 파운드 이하인 계좌의 경우 일시금 인출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적립금 규모가 10~25만 파운드 이상인 가입자들은 비과세 한도인 적립금의 25%까지만 수령하고 이후 드로다운을 이용해 연금을 지급받는 형태가 많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적은 경우 일시금 수령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낮은 세율과 적은 규모의 적립금을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월노후 소득원으로서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2만4000파운드의 적립금을 20년간 연금으로 수령한다고 가정하면 월 수령액의 가치는 약 100파운드에 불과하다. 일시금으로 인출한다고 해도 적립금의 25%인 6000파운드까지 비과세되고,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 1만7000~2만4000파운드까지는 20%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적립금 규모가 큰 가입자의 경우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비과세가 적용되는 적립금의 25%까지만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 적립금은 드로다운 등 펀드 형태로 운용하며 연금으로 수령받는 방식을 선호했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8만 파운드일 경우 25%인 2만 파운드는 비과세 적용을 받지만 나머지 6만 파운드를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소득세율에 따라 최대 40%까지 과세가 되기 때문이다.

◆10년간 월 수령액 평균 17만원에 불과

우리나라는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작은 서민들은 연금으로 받는다고 해도 큰 혜택이 없지만 퇴직연금을 많이 쌓아둔 사람들은 연금으로 수령하면 상당히 유리한 점이 많다.

국내 퇴직소득세의 명목세율은 6~38%다. 하지만 공제 및 연분연승법을 통한 과세 감면을 적용 받아 퇴직 급여를 일시금으로 선택해도 대부분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3% 이하의 세율을 적용 받고 있다.

게다가 적립금이 적을 경우 누진적으로 적용되는 퇴직소득세율 역시 낮기 때문에 일시금 수령에 대한 세 부담이 매우 적다.

일인당 평균 적립금이 2078만원 수준인 일반 서민들의 경우 10년간 연금 수령 시 월 수령액은 현재 가치로 매월 17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시금을 선택하는 비율은 퇴직급여 수령자의 98%에 이른다.

반면 연금방식을 선택한 퇴직급여 수령자의 일인당 적립금은 평균 2억6743만원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연금으로 수령 받는다고 하면 월 수령액은 현재가치로 매월 223만원으로 노후소득원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또 적립금이 고액인 가입자가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제 혜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퇴직급여 적립금을 연금으로 나눠서 받으면 산출된 퇴직소득세의 30%가 경감되는 한편 연금수령기간 동안 나눠서 납부할 수 있는 세제혜택까지 주어진다.

연금자유화 이후 영국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적립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여도 및 세제상의 이유로주된 수령형태이던 종신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받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정원석 연구원은 “영국과 우리나라 보두 적립금 규모가 큰 경우 연금화 수령 시 누릴 수 있는 세제혜택이 상당하고 가입자들이 이에 반응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퇴직연금이 연금으로 수령돼 노후소득보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연금화 수령에 수반되는 세제 혜택은 높이는 한편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 수령할 수 있는 조건과 일시금 수령 시 과세를 강화하는 유인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