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위로의 손길 내민 광화문글판, 시문학 발전에 공로

‘맨부커상’의 한강 만든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도 평가

   
▲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광화문을 지날 때면 으레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펼침막으로 눈길이 간다. 오늘은 어떤 글귀가 적혀있나 살펴보는 것이 오랜 습관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수백만이 움직이는 광화문 광장과 사거리, 교보빌딩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펼침막은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난 1991년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27년이 되었다. 연전에는 시인 고은 선생을 모시고 25주년 기념행사를 했을 정도이니, 서울 시민들에겐 이미 명물로 자리 잡았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싶다. 그래서일까? 한국시인협회는 지난 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명예시인으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근거는 대산문화재단과 광화문글판 등을 통해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시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다.

대산문화재단은 지난 1992년 교보생명이 출연한 공익재단으로, 한국문학의 번역 연구 출판지원 등의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그 성과물 중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해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2014년 영국 출판 지원사업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주어지는 종합문학상 중 최대규모인 ‘대산문학상’도 운영하고 있어 그 역할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광화문글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의성 있는 문장으로 도시인들의 청량제 역할을 해왔다. 25주년을 맞아 온라인 투표로 선정한 문장만 살펴봐도 얼마나 우리들과 친숙했는지 싶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당시 선정한 69편의 문장 중 상위 5편의 글귀이다.

   
▲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시 ‘그리고 미소를(Et un sourire)’ 중 일부 구절을 발췌한 광화문글판 겨울편.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주변을 살피고, 먼저 손을 내밀어 희망을 나누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꽃이 어디 있으랴/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2004년 봄,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먼 데서 바람불어와/풍경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2014년 여름, 정호승 ‘풍경달다’), “대추가 저절로/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천둥 몇 개/벼락 몇 개”(2009년 가을, 장석주 ‘대추 한 알’), “사람이 온다는 건/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2011년 여름, 정현종 ‘방문객’),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2012년 봄, 나태주 ‘풀꽃’) 하나같이 쳇바퀴 돌 듯 뛰어가는 도시민들과, 사연 가득 담고 광장을 채우는 시민들의 허탈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글귀들이다. 직접 신 회장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직접 선정한 문장도 아니지만, 근 30년을 한결같이 원칙을 지키듯 위로와 격려의 글을 올려준 그의 감성을 높이 산 결과가 명예시인 추대일 것이다.

재무설계사들을 격려하는 수상식장(2015년 4월, 일산 킨텍스)에서도 그는 이해인 수녀의 ‘친구야 너는 아니?’라는 시를 낭송하면서 성공을 일구어내기 위해선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었고 창립기념식에선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2011년)를 읽으면서 난관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자고 말하기도 했던 그였다.

시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명징하게 전달하려는 신 회장의 자세가 이미 시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 회장은 광화문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매순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광화문 어느 길목을 걸으면서 고개 들어 눈에 ‘글귀’가 들어오는 순간만이라도 그러해주길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요즘을 사는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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