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술공부 10년 만에 주당 입맛 사로잡아

천연재료만으로 맛내는 원칙 있는 술도가 꿈꿔

   
▲ 사계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해창주조장의 아름다운 정원 모습.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여행길에서 만난 막걸리가 입에 맞아 앉은 자리에서 한말 술통을 비우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는 택배로 받아 마시고, 결국 그 술도가의 주인장이 되어 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해창주조장의 오병인 대표. 그가 서울을 떠나 해남 바닷가에 정착한지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해남 땅을 밟기 전까지, 그는 8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동네에서 촌부로 살아가며 마실 줄만 알았던 술을 빚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공공기관)을 정리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해남까지 그가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담백했던 해창의 술맛이었다고 한다.

40여종의 수목과 수석, 1급수를 유지하는 연못 등이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정원과 그 속에 단아하게 들어선 살림집도 눈에 밟혔지만, 그것만으로 해남 행을 결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이 술도가의 주인장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원주인(황의권)의 아들들이 가업을 잇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결국 황의권씨는 자신의 술을 택배로 받아 마시던 단골들에게 양조장 인수의사를 타진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오병인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술도가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인수를 결정하고 부인인 박리아씨가 먼저 내려가 양조 기술을 전수받았고, 오 대표도 직장과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가 술공부에 돌입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술빚기 10년만에 해창막걸리는 막걸리 주당들에게 손에 꼽히는 술이 되었다.

지난해부터 술의 텁텁함을 지우기 위해 조금 넣었던 아스파탐도 빼버렸다. 해남에서 생산하는 멥쌀과 찹쌀, 그리고 자신의 누룩만으로 술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발효 숙성시키는 일반 양조장과 달리 20일 동안 숙성시킨 해창의 술맛은 단아하다. 송명섭막걸리만큼 무겁지 않으면서 천연의 단맛이 입에 감돌다 이내 사라진다. 다음 술잔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맛이다.

   
▲ 아스파탐 없이 천연의 단맛을 이끌어낸 해창의 막걸리 3형제. 각각 오른쪽부터 6도, 9도, 12도 제품.

알코올 도수도 지난해부터 세분화시켰다. 처음에는 6도와 12도로 빚다가 9도짜리 막걸리를 추가시켰다. 6도가 담백한 단맛이라면 12도는 알코올 도수 만큼 묵직한 바디감을 전해준다. 하지만 찹쌀을 주로 사용(멥쌀과 찹쌀의 비율 2대8)한 만큼 단맛이 충분하다. 한마디로 입에 착 붙는 술이다. 9도 막걸리도 12도와 같은 비율로 찹쌀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멥쌀보다 비싼 찹쌀을 쓰는 것은 천연의 단맛을 필요한 만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멥쌀로만 빚은 술이 드라이하다면 찹쌀로 빚은 술은 단맛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술맛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늦깎이로 배운 술공부가 어느 정도 빛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병인 대표는 원칙을 지키는 양조장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막걸리의 표준이 없는 세상이지만, 자신만은 원칙을 지키며 아스파탐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술을 빚겠다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내려간 날은 오 대표가 오키나와 술도가 여행을 마치고 온 다음 날이었다. 오키나와의 증류소주를 견학하고 온 것이다. 아직 소주면허를 낼 계획은 없지만 차츰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 준비의 첫 순서는 17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우리식 청주를 빚는 것이다. 그의 술맛이 이어질 청주가 그래서 기대된다.

겨울철에도 푸름을 유지하는 정원도 볼만하지만 오는 손님과 기꺼이 몇 순배의 술잔을 나누는 오 대표의 따뜻한 마음과 안주인 박리아씨의 맛깔스런 안주가 주당들을 해창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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