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경제가 향후 수십년간 맞게 될 가장 엄중하고 구조적이며 비가역적인 위험요인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고 고령화 속도 앞에 산업현장은 건강한 노동력 부족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하락하며 가계는 기대수명만큼 미래소비에 대비하느라 현재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은 국가경제의 미래 흐름을 미리 반영하는 경제의 축소판으로 인구구조의 장기적 영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선임연구원과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정광수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와 주식시장’ 연구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인구구조의 경제적 영향력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저출산ㆍ고령화에 대한 정책 대안을 짚어봤다.


◆직접투자 주식, 은퇴 후 오히려 보유액 늘어나

금융자산 수요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인구변수는 '절대인구', '중년-노인비율', '기대수명' 등이다. 전세계 인구는 2100년까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급격한 고령화 현상에 따라 OECD 국가의 절대인구와 생산가능 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전환되고 있다.

금융시장은 중년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며 인구감소에 따른 자산수요 위축과 자산가격 하락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

중년인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저축을 확대하면서 저축수단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세대이며, 노인인구는 은퇴 후 소비지출을 위해 저축자산을 줄이고 주식을 내다 파는 세대에 해당된다. 따라서 중년인구에 비해 노인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구조 변화는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시장연구원은 노령인구의 증가가 오히려 위험자산 수요에 있어 저축자산의 인출시점과 주식 매각속도를 늦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주체들이 연령에 따라 실제 어떤 금융자산을 선호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금융자산별 보유율(참가율), 금융자산별 보유액(중간값),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구성 등의 지표를 살펴본 결과 나이가 들수록 위험자산에 대한 참가율, 보유액, 포트폴리오 비중이 높아졌다.

주목할 점은 기존의 생애주기가설과 달리 주식 보유도가 은퇴와 함께 급격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이 자기 생애에 모든 금융자산을 소비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유산동기나 은퇴 이후의 예상치 못한 지출(건강보험 등)에 대비한 예비적 동기 등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가계 금융자산통계를 볼 때 가계의 주식보유가 연령뿐만 아니라 직접투자한 주식인지 간접투자한 주식인지에 따라 보유 특성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확인됐다.

퇴직연금 등 연금을 통한 간접주식은 중년기에 급격히 증가하다 은퇴와 함께 갑자기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개인이 직접 투자해서 보유한 직접주식은 은퇴 이후에 오히려 참여율과 보유액, 포트폴리오 등 모든 면에서 비중이 늘어났다. 또 가계는 은퇴 이후 주식 보유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가계에서 보유한 펀드는 간접투자 임에도 은퇴 후 연금보다 더 늦게 인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은퇴 후에 직접보유 주식이 늘어나는 현상은 높은 위험을 기피하는 노령인구의 성향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주식투자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와 주식을 유산으로 물려줄 때 상속세와 자본이득세가 면제되는 세제효과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유연한 연금인출 정책이 자산가격 붕괴 막아

은퇴 이후 직접보유 주식이 줄지 않는 대신 연금을 통한 주식 보유가 빠르게 줄어드는 현상은 주식가격 변동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금을 통한 주식 보유가 은퇴와 함께 빠르게 줄어드는 현상은 연금 인출제도와 관련이 깊다. 주식시장 관점에서 보면 고령화로 연금수령 인출 인구가 늘어날수록 주식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적립방식의 연금제도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공적연금 및 사적연금의 연금 수급자 은퇴가 집중되는 단계에서 구조적인 불균형 요인이 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고령화로 인해 자산가격이 급격히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이 같은 유인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연금인출 단계를 정비해 인출연령 등에 다양한 옵션을 두고 개인의 인출 스케줄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선진국의 연금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던 시절은 은퇴 후 기대여명이 15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공적연금이든 사적연금이든 연금화와 관련해 제도적으로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 주식, 펀드 등 연금이 보유한 위험자산에 대해 현물로 인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식도 고려해봐야 한다. 미국에서 은퇴 후 직접주식 보유가 늘어나는 현상은 신규 취득 못지않게 연금의 일부를 주식 등 현물로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고령친화적인 미국의 세제가 만들어낸 제도의 산물일 수 있지만 주식시장 관점에서도 유익한 방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고령화가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해 OECD 12개 국가의 거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유년인구 대비 중년인구 비중이 커질수록 연평균 1.1% 주가가 상승하는 결과를 보였지만, 중년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중이 커질수록 수급이 악화되며 주가가 연평균 0.7% 하락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송홍선 선임연구원과 정광수 교수(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는 “주식시장에서 전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구조를 지식집약적이고 고령친화적으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고령화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 경우 생산성이 향상되며 자본유입으로 인한 주식시장의 수요기반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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