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9 12:00 (수)
갓 증류했지만 단맛 내는 ‘삼해소주’
갓 증류했지만 단맛 내는 ‘삼해소주’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7.03.12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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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서 대이어 가양주 빚는 김택상 명인

술 빚는 재료 본연의 맛과 향 응축된 대표 명주

   
▲ 서울 북촌에는 다양한 공방이 존재한다. 그곳에 서울을 대표하는 술, 삼해주의 본가가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 이동복 여사로부터 삼해소주 기법을 전수받은 김택상 명인이 지키고 있는 삼해소주가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마포 나루는 조선시대 한양의 물류중심지다. 세곡선과 소금배들이 쉼 없이 드나들던 곳이 마포를 포함한 삼개 나루터이다. 이곳에 조선시대 한양을 대표하던 술이 있다. 음력 정월 첫 해날(돼지날)부터 짧게는 36일, 길게는 100일 발효 숙성시킨 술. 삼해주(三亥酒)다. 서울시는 이 술의 제조비방을 전수받은 두 명인에게 무형문화재를 지정했다. 삼해약주를 빚는 권희자 선생과 삼해소주를 빚는 김택상 선생이 그들이다. 지난 2월부터 총 다섯 차례 김택상 명인의 공방에서 삼해주와 삼해소주를 직접 빚으며 서울의 술 삼해주를 취재했다. 고도 서울의 풍미를 가득 담고 있는 삼해주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갓 증류한 술은 입술에 닿자마자 알코올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혀에 닿자마자 뿌리까지 느껴지는 강한 알코올 맛 때문이다. 그래서 목 넘김이 수월한 고도주(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를 만들기 위해 위스키와 브랜디를 생산하는 외국의 양조장에선 증류한 술을 통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담아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그런데 경복궁을 끼고 오른 쪽 길로 접어들어 십 여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동네. 북촌 한 가운데에 있는 ‘삼해소주 공방’에서는 갓 증류한 술을 목 편하게 넘기면서 술맛을 즐길 수가 있다.

“세계 어느 술도 금방 증류한 술을 이 술처럼 편하게 마실 수는 없어요.”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해소주 공방의 지킴이 김택상 명인이 필자에게 자기로 만든 하얀 소주잔을 건네면서 한 말이다.

받은 술잔을 입술에 대자마자 아직 식지 않은 알코올이 혀에서 기화되듯 목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진다.

알싸한 알코올의 존재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에선 짙은 향내가 나고 있었다. 알코올은 특유의 쓴맛으로 미각세포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쌀 소주답게 단맛을 공글리고 사라진다. 목을 넘어간 소주는 다시 부비강을 통해 코로 향내를 건네고 있다. 다채로운 향기다. 쌀소주의 단맛과 꽃향기가 어우러진다.

이것이 조선 후기 학자였던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실려 있던 삼해소주의 맛이었다. 홍석모는 독막(지금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대흥동 사이)에서 만들던 삼해소주가 가장 좋은 맛을 내고 있었다고 말한다. 생산규모도 엄청나다. 수백에서 수천 독씩 빚었으니 한양의 반가에선 분명 독막에서 만든 술을 즐겼을 것이다.

   
▲ 전통은 전통대로, 그리고 이를 현대식으로 해석하고 싶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김택상 명인.

이름만 열거해도 조선 시대 대표 문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거정, 기대승, 이규보의 시와 가사에서 그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냈던 술 ‘삼해주’. 이 술은 분명, 서울을 대표하던 술이었다. 하지만 한일합방 이후 서울 땅에서 사라진다. 일제에 의한 주세령이 가양주 문화를 삽시간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안의 가양주로 몰래 술을 빚어왔던 안동 김씨 가문과 통천 김씨 집안이 있어, 1990년 이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돼 주었다. 안동김씨 가문에선 권희자(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명인이 삼해약주를 빚어왔으며 통천 김씨 집안에선 이동복 명인에 이어 그의 아들 김택상(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명인이 삼해소주를 내려왔다.

삼해주는 음력 정월 첫 해일에 시작해 해일마다 중밑술과 덧술을 하는 삼양주 방식의 술이다. 매달 첫 해일마다 술을 빚어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키는 술을 ‘큰 삼해주’, 첫 해일 이후 12일마다 오는 해일에 술을 더해 숙성시키는 ‘작은 삼해주’라고 부른다.

김택상 선생은 삼해소주를 빚는다. 따라서 좋은 소주를 내기 위한 어머니의 주방문에 따라 술을 빚는다. 첫 해일 전에 죽으로 밑술을 담고 해일마다 세 번의 술을 빚는다. 밑술을 포함하면 사양주(四釀酒)가 된다. 그리고 매번 술을 빚을 때마다 누룩을 사용한다. 추운 겨울에 길게 빚는 술이라 효모를 충분히 공급하는 목적도 있지만, 소주의 맛을 위해서라고 김택상 선생은 설명한다.

김택상 선생은 전통의 삼해주 이외에 포도, 귤, 국화꽃 그리고 상황버섯으로 빚은 누룩을 사용한 삼해주도 빚는다. 그렇게 빚은 술을 증류한 소주는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존재감을 향으로 드러낸다. 상황버섯누룩으로 만든 소주 한잔이 내는 향은 방을 가득 메우고 남는다. 중국의 명주인 마오타이가 장향형의 술이라는데, 김택상 명인의 술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런데 각각의 버전별로 술의 향이 다르다. 포도와 귤, 그리고 국화와 상황버섯이 술에 응축된 듯 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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