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회장 미국 출장 후 ‘디지털 혁신’ 주장

“디지털혁신 실패하면 KB금융 단순 공공재 전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60년 전 미국의 은행장들은 뉴욕 본사에서 해외 지사장들과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한 나절은 소비해야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당시의 통신환경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보를 주고받는 채널이 대서양 횡단 케이블과 위성을 이용한 회선 중 일부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한다. 운이 나빠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면 어쩌면 은행장들은 하루 종일 전화기 주변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전화 회선이 은행장의 바쁜 일정을 알아볼 리 만무한 일이니, 결국 비서진들은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연결 신호음을 애타게 기다리며 다이얼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또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한 번 전화가 연결되면 요금이 얼마가 나오든 관계없이 하루 종일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유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 주요한 업무가 며칠씩 처리되지 않고 지체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때 입게 되는 손해가 전화요금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4000명의 미국인들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도록 미국과 대서양 사이에 6개의 전화 케이블이 가설되었던 1976년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러 광섬유가 처음 깔리면 동시에 4만명이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통신 기술이 은행장의 업무 스타일을 바꿀 정도로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이동 중에도 국내는 물론 국제전화를 할 수 있으며 데이터망을 이용한 전화와 영상전화까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처럼 편리한 모바일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 모든 은행장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현장’중심의 경영을 외치고 있다.

이렇게 기술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한다. 그런데 그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듯싶다. 특히 기술 그 자체가 은행의 핵심덕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와 빅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이 그저 은행이 고객을 만나는 하나의 채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은행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뜻이다.

지난주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사진>의 메시지에서 은행권의 변화 분위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지주사 임원회의를 통해 내놓은 윤 회장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디지털로 무장하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윤 회장의 어록을 살펴보면 ‘기술’에 대한 과거 은행장들의 시각과 분명하게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대목이 디지털에 대한 개념이다. “디지털은 온라인, 모바일 채널에 얹는 수준의 점진적 서비스 개선이나 자동화 비용 절감 노력이 아니다.” 즉 기술을 더 이상 수단으로만 바라보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윤 회장은 디지털 혁신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 혁신에서 실패하면 KB의 금융 사업은 조만간 단순한 공공재로 전락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이달 초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등을 KB금융 주요 계열사 임원들과 함께 출장을 다녀온 뒤 내놓은 것이다. 출장 기간 중 구글 등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과 뉴욕의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디지털금융에 적극적인 금융회사를 방문했다고 한다.

핀테크와 관련, 가장 빠르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 시장을 보면서 KB의 변화 포인트를 읽어낸 윤 회장은 그래서 KB를 디지털 리더들의 사관학교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가질 필요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유능한 인재의 경우 문호를 개방해서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하고 또한 내부의 전문가 집단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과거에 없는 파격적인 기술 중심의 메시지인 것이다.

바야흐로 기술이 세상의 각종 제도와 규칙을 규정하는 새로운 사회로의 잰걸음을 윤 회장의 어록을 통해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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