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가 일시금으로 받는 한국의 퇴직연금

연금이란 퇴직 후 평생 지급되는 현금 흐름으로 퇴직 후 소득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행 퇴직연금은 연금이라기 보단 퇴직하면 한번에 목돈을 받는 ‘퇴직저축’이라 불리는 편이 정확하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가장 큰 특징은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일시금으로 계산해 지급한다는 점이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유형에 관계없이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인출하거나 연금으로 받는 방식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개인의 선택 폭을 보장하는 대신 퇴직자산이 퇴직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구체적인 수치만 보아도 이 같은 사실은 극명히 드러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연금수급요건(55세 이상)을 갖춘 19.8만 계좌 중 98% 이상이 퇴직급여로 일시금을 선택했으며 연금을 선택한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퇴직급여 수령액 기준으로 보면 전체 4조7579억원 중 16.9%(8037억원)만이 연금으로 수령됐으며 이러한 추세는 퇴직급여 유형별 지급현황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2012년 4분기부터 지속되고 있다.

퇴직자산을 분할 인출할 때 흔히 쓰는 방식 중 하나가 ‘종신연금’이다. 퇴직자산을 종신연금으로 받을 경우 가장 큰 장점은 현금흐름이 평생 지속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종신연금 수요가 이론적인 예측치에 비해 크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 홍원구 연구위원은 “종신연금 수요를 제약하는 요인은 생명보험사의 사업비용, 종신연금 계약자들의 역선택으로 인한 연금가격 상승, 퇴직자산에 대한 상속욕구 등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러한 요인 외에도 ‘퇴직연금 자산규모’, ‘퇴직연령’, ‘세제’ 등 국내 퇴직연금이 가진 특징적 요인을 반드시 검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방식…월지급금, 수령연령, 세제혜택 모두 ↓

국내 상당수 가입자들의 퇴직연금규모는 가입기간이 짧아 연금으로 인출하기엔 금액이 너무 작다. 2012년 4분기부터 2015년 2분기까지 퇴직급여 수급자 일인당 평균 일시금은 약 1680만원이었다. 이 금액은 근로자의 평균급여를 적용하면 약 6.3년분의 퇴직급여에 해당되며 50대 가구주의 평균 가계소득 47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약 3.6년분의 퇴직급여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금액을 연금으로 받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금액이 너무 작아 생활비로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실제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한 사람들의 평균 수령액은 2461만원으로 연금 수령을 선택한 사람들의 평균 수령액 2억2272만원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일찍 퇴직할수록 일시금 인출이 촉진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퇴직연금 자산인출을 55세 이후 허용하고 있는데 퇴직연령이 낮으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생활비가 필요하고 사업자금 등 다른 용도가 그만큼 많아진다.

정책적인 면도 퇴직연금의 분할인출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다. 우리나라는 퇴직 일시금이 평생 한번 받고 여러 해에 걸쳐 발생한 소득이라는 점이 고려돼 퇴직 일시금에 관대한 과세 방식을 유지해 왔다.

2012년 이후 연금선택 촉진을 위해 고소득자의 퇴직 일시금에 대한 과세가 강화됐지만 여전히 근속연수공제, 급여공제 등이 남아 있어 실효 세율을 낮추고 있다. 연금에 대한 세금이 과도한 편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일시금에 대한 세금이 관대해 일시금 선택 비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개선한다고 해도 일시금 선호에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것이다. 퇴직자들의 입장에서 일시금으로 받아 놓는 것이 향후 세제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피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할인출 촉진 위해 제도적 개선 지속해야

퇴직연금의 도입목적은 퇴직 후 소득의 안정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근로자의 퇴직소득 안정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분할인출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지속해야 한다.

홍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의 자산규모가 연금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퇴직 전 중도 인출을 최대한 억제해 퇴직자산 규모를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더불어 퇴직 일시금에 대한 과세가 낮아 일시금 선택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일시금에 대한 세제 조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 퇴직연금 납입액에 대한 과세이연은 근로자들이 과거부터 누리던 실질적인 혜택이기 때문에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인출단계에서 과세하는 방식이 일시금 인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제안했다.

퇴직연금상품 간 재정 거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품과 제도 설계도 다시 검토돼야 한다.

현재 주택연금은 생명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종신연금의 3분의 2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퇴직상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가 주택연금에 상응하는 지급액을 보장할 수 없다면, 퇴직연금 자산으로 생명보험사의 종신연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주택을 구입해 그 주택을 연금화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4월 기준 60세 남자가 1억원으로 즉시 연금을 구입하면 보험사에 따라 월 38만원(20년 보증, 3.02%), 또는 월 38만원(264회 보증, 3.02%)을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시기 60세 1억원의 주택 소유자는 주택연금 월 22.7만을 받았다.

주택연금은 부부 중 오래 사는 사람이 생존하면 지급되기 때문에 생명보험사가 60세 여자에게 지급하는 월 33만원과 비교해 보면 월 10만3천원 정도가 차이나고 이 금액은 은행에 지급하는 전월세금에 해당된다.주택 가격의 31%가 전월세 금액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금액이 연금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회사들은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제공하고 주택연금상품도 현실적인 연금액이 지급하도록 재설계 돼야 할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퇴직자산을 분할인출할 경우 퇴직자산을 운용해 일정 기간마다 소득을 지급하는 상품과 인출 기간에 걸쳐 투자위험과 장수위험을 관리해줄 금융회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며 “이때 퇴직연금 인출단계의 사업자가 적립단계의 사업자와 동일하지 않아도 큰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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