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통주 ‘오메기술·고소리술’로 전국 시장 노크

김숙희 대표 “전통주 사업, 긴 안목으로 승부 봐야”

   
▲ 2005년 이후 제주의 술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제주샘주의 김숙희 대표.

포도가 많이 나는 지역에선 포도주를 빚어 마시고, 보리와 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선 맥주를 주로 마신다. 술의 역사를 쫓다보면 절대법칙처럼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주로 나는 식물을 이용해 술을 빚어왔다. 우리가 막걸리와 청주, 그리고 이를 증류한 소주를 마셔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제주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벼가 생산되지 않는다. 비가 내려도 모두 지하로 침출되는 독특한 제주의 지형 탓에 쌀 생산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육지에서처럼 쌀을 이용해 막걸리와 청주를 빚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주에는 좁쌀이 있었다. 요즘 대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오메기떡이 바로 이 좁쌀을 이용해 만든 떡이다. 제주사람들은 쌀을 대신해 오메기라고 부르던 차좁쌀로 술을 빚어 마셔왔던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증류기술이 전파되었던 고려 때부터 제주는 오메기술을 증류한 고소리(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술을 마셔온, 술과 관련해 상당한 내공과 역사를 가진 곳이다. 물론 일제의 주세법과 60~80년대의 양곡관리법 시대를 거치면서 집집마다 빚어오던 오메기와 고소리술은 몰래 빚는 몇 집을 제외하곤 자취를 감추었지만 말이다.

그랬던 제주의 술이 2005년 술도가를 인수해 술을 빚기 시작한 김숙희 제주샘주 대표의 손에서 전국 명품주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이래 5년 동안 우리술품평회 증류주부문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연속으로 수상할 만큼 전국적 술맛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수상경력이면, 술과 관련한 이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오는 가양주의 전통을 현대에 되살렸다는 정도의 스토리텔링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김숙희 대표가 직접 술을 빚은 적은 없다고 한다.

술도가를 인수하기 전까지 요식업에 종사했다는 김 대표는 “시어머니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으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한 번도 양조업을 꿈꾸지 않았다”고 결혼 초기 그녀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랬던 그녀가 생각을 바꿔 술도가를 열게 된 배경은 남편의 사업적 판단이었다.

“남편이 군납을 생각하면서 우연하게 술도가를 인수하게 되었다”고 말한 김 대표는 그 이후 12년간 가시밭길을 걷듯 고생했다고 한다. 그나마 제주 토박이인 남편의 땅을 처분해 사업자금으로 운영하면서 위기의 순간들을 겨우겨우 넘겨왔다는 것이다.

   
▲ 제주샘주가 생산하고 있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지금은 국내외 술품평회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할 정도로 술맛을 인정받고 있지만, 인수 당시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맛은 자신이 원하는 술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김 대표는 제주 고유의 부재료(조릿대, 개똥쑥, 감초 등)를 찾아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원주인 오메기술을 안정화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고도주이지만 목넘김이 편하고 달보드레하게 단맛이 이어지는 고소리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제주샘주에서 만들고 있는 술은 청주(주세법상 약주)인 오메기술(13도, 15도)과 증류소주인 고소리술(29도, 40도), 그리고 한라산 산양산삼을 고소리술에 침출시킨 세우리 등이 있다. 여기에 제주샘주는 제주 특산의 귤을 이용한 새로운 술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도내 양조장에서 귤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해왔지만 만족스러운 술맛이 나지 않아, 제주샘주에서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그러다 속을 제거한 진피(귤껍찔)만을 활용해 오메기술을 빚는 방식으로 술을 빚으면서 목표했던 술맛을 찾을 수 있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조만간 출시될 이 술의 이름은 ‘니모메’. 시음을 하지 않아 이 술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지만, 귤술을 찾으려는 제주샘주의 노력 하나가 제주 술역사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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