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은행장, 지역별 본부에 인사·예산권 등 대폭 이양

1·2차대전서 성과 거둔 독일군 ‘임무형 지휘체계’와 유사

   
▲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은행장들이 연일 디지털과 ICT(정보통신기술)를 핵심 메시지로 내놓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영업 이틀 만에 6만좌 이상의 고객을 유치하는 등 초반 돌풍을 일으키자, 기존 은행들은 디지털 무장론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창립기념사를 통해 “금융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경쟁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신한의 경쟁자는 정보통신기술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의 함영주 행장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여신심사나 리스크 관리 등 은행 업무의 디지털화를 통해 손님과 함께 성장하는 디지털 은행을 만들겠다”며 직원들에게 디지털 무장론을 설파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디지털사관학교를 만들겠다며 디지털 무장론을 먼저 주창했던 윤종규 KB금융지주회장도 지난주 조회사를 통해 “디지털과 모바일의 금융혁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고 예상보다 빠른 패러다임 변화를 전망하면서, 디지털 경쟁자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주문하기도 했다.

DNA가 다른 정보통신기술 업체보다 더 빠르게 시장의 흐름을 읽고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선 속도가 무엇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은행장들도 파악한 것이다.

특히 KEB하나은행의 함영주 행장이 이 같은 추세에 발 빠른 대응에 나서, 은행권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지역 소사장제 도입’이다. 2분기 조회사 형태로 발표된 이 정책의 핵심은 각 지역별 영업본부의 자율경영이다. 이를 위해 영업본부장에게 인사권과 예산권 전권을 부여하고, 지역별 특성에 맞는 독립적인 목표 설정 및 자율적인 영업추진 평가 권한을 맡길 계획이다.

‘예전처럼 본점에서 일괄적으로 지시 통제하는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영업방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앞서나갈 수 없다’는 것이 소사장제 도입의 명분이다. 한마디로 보수적인 금융의 DNA를 타파하지 않고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에서 생존할 수 없으며, 그러기 위해선 수직적 명령지휘체계를 버려야 한다고 강변한 것이다. 마치 ‘임무형 지휘체계를 적용해 1,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승승장구했던 독일군 전술을 채택한 모양새다.

당시 독일군은 슐리펜 계획에 의거,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고자 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장에서의 빠른 의사결정을 도모할 수 있게 했던 ‘임무형 지휘체계’를 적용했다. 특히 물류 및 병참체계가 취약했던 러시아와 소련이 개입하기 전에 프랑스와의 서부전선을 종결시켜야 한다는 전술적 판단 때문에 각종 돌발변수에 대한 수직적인 명령지휘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의 결과였다. 물론 무리한 전술 운용의 결과는 패전이었지만, 스스로 현장 상황에 맞춰 미션을 해결하는 자율적 의사결정구조는 이후 타국의 군대에서도 채택할 만큼 효율성을 입증 받았다. 특히 경영에서도 수많은 기업들이 수용할 만큼 그 성과는 탁월했다.

보수적 문화가 지배적이던 국내 금융권에도 케이뱅크라는 메기가 등장하면서 기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고, 그 출발은 수직적 체계를 허무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은행사 110년 만에 비로소 수직적 의사결정구조를 벗어나는 실험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KEB하나은행에 국한되지 않고 변주된 형태로 전체 금융권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유는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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