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역사 깃든 양조장 지키려 고향 괴산으로 귀촌

늦깎이 술 배우며 ‘막걸리 오디세이’ 나선 유기옥 대표

   
▲ 괴산 목도양조장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양조도구가 양조장 한켠에 마련된 전시실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사진=목도양조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00년의 역사를 채워가며 지역에서 막걸리의 명맥을 이어온 우리의 술도가들이 활로를 찾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맥주와 소주에 밀려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의 손길은 뜸해지고 있는데다,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장수(서울)’와 ‘생탁(부산)’등 대도시 막걸리만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지역경계가 사라진 뒤에는 자본의 힘을 배경으로 대도시 막걸리들이 지방 시장까지 치고 들어가고 있어 면단위 양조장들은 더욱 설 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충북 괴산의 목도양조장. 일본인 양조가가 처음 만들었고, 그 이후 국내 자본이 인수해 새롭게 양조공간을 건축해서 근 90년 동안 현재의 위치에서 술을 빚어온 전통 있는 술도가이다. 또한 전국의 내로라하는 술들과 경연을 벌여 당당히 술맛도 인정받아(1939년 주류품평회 약주 부문 1위) 전국주의 명성을 가진 양조장이기도 하다. 처음 이 공간에서 술을 빚던 사람들은 일본 기후현 출신의 양조인(土本高吉)이었다고 한다. 1920년경 현재의 위치에서 술을 빚기 시작했으며, 이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유기옥 대표(3대째 사장)의 할아버지인 유증수씨가 1937년에 사들여 새롭게 양조장을 건축하고 본격적인 막걸리와 약주 빚기에 나선 것이다. 인수할 당시 유증수씨는 괴산면에서 술도가를 운영(1931년 창업)하고 있었다.

따라서 처음 이 술도가에서 술을 빚은 때로부터 계산하면 근 100년의 역사가 양조장 항아리에 쌓여있는 것이 되고, 1대째 사장이 창업한 1931년부터 따지면 90년 가까운 역사가 목도양조장의 막걸리에 담겨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전통과 맛을 함께 가지고 있던 목도양조장이 2010년 이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농업인구의 급감에 따른 지역 양조장의 쇠락과 동일한 이유이다.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에 처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기옥 대표는 4년전 귀촌을 결심한다. 초등학교까지는 괴산에서 살았지만, 이후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던 유 대표에겐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다. 남편은 잘나가는 의대교수. 굳이 모험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유 대표는 ‘막걸리 오디세이’를 감행한다. 이유는 단 하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곳곳에 스며있는 양조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목도양조장의 3대째 사장인 유기옥 대표와 이석일 교수 부부

바로 술 빚는 법을 배우고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 괴산에서 촌부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5년차가 되고 있는 유 대표. 그녀는 관리가 힘들어 다들 스텐리스 발효조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대형 항아리로 술을 빚고 있고, 손쉬운 관리를 위해 대개의 양조장들이 입국으로 술을 발효시키지만, 누룩으로 밑술을 내서 술 담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1959년에 세워진 판매장 건물은 시음장을 겸한 쉼터로 꾸몄으며, 자신의 막걸리를 이용해 보리술빵을 만들면서 ‘힐링’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목도양조장에서 빚는 술은 두 종류이다. 그중 ‘목도맑은술’은 멥쌀보다 찹쌀을 더 넣어(40%대 60%) 빚고, 전통의 동동주처럼 걸러 조금 진한 황금빛을 띤다. 찹쌀을 많이 사용한 만큼 단맛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14도의 알코올감은 앉은뱅이술이라 불릴 정도로 술의 질감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빚는 술은 전통의 ‘목도막걸리’. 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막걸리지만, 목도만의 스토리텔링과 술빵으로 진화시키려는 술도가 주인장의 마음씨를 닮은 술이라 할 수 있다.

문화는 박물관에서 박제처럼 보관되어 있는 문화재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유형과 태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정신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문화일는지도 모른다. ‘시간도 마음도 쉬어가는 양조장’을 기치로 내건 유 대표의 ‘막걸리 오디세이’가 그렇게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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