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농협은행장, 신입행원에 따뜻한 금융전문가 주문

“고객 마음 헤아리고, 그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달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업은 냉정한 사업이다. 이유는 돈이 비즈니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너의 화폐는 할 수 있다. 너의 화폐는 먹고 마실 수 있으며 무도회에도 극장에도 갈 수 있다. (…) 너의 화폐는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 너의 화폐는 진정한 능력 그 자체이다.”

그런 힘을 가진 돈이기에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늙은 것을 젊게 만들고, 심지어 문둥병조차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만들며,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몰려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화폐를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근거로 유통시키는 사업이 금융업이다. 토판에 쇄기문자로 기록을 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신용거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금융업은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이 보여 온 화폐에 대한 물신성과 그 결과로 나타난 냉혹함은 금융업(고리대금업)을 가장 부정적인 직업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 첫 이야기에 고리대금업을 펼쳐온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롬바르디아주 사람들을 교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옹호하려 들지 않았다고 프랑스 부르고뉴 사람들의 입을 빌어 비꼬아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등장한다. 물론 이 작품은 14세기에 쓰려진 <일 페코로네(바보)>라는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하니,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베니스, 그리고 고리대금업에 종사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듯싶다. 

여기에 등장하는 샤일록이 유럽 고리대금업자의 일반형이었는지는 몰라도,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이전 사람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신곡>에서 이들을 17지옥으로 보냈다. 이 지옥은 남색을 저지른 자들과 함께 벌을 받는 곳인데, 뜨거운 모래밭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불꽃이 널름거리고 불붙은 재가 퍼부어 진다고 한다. 이곳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은 살아생전 은행에서 일하던 자세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고리대금업을 지금의 금융업과 등치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현대적 금융업은 산업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혁신가들에게 성공의 기반을 만들어주었으며, 모험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자 했던 창업자들에게 단비 같은 여신을 제공하기도 했다. 당연히 샤일록처럼 채무변제를 하지 못한 사람에게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화폐 고유의 냉정함은 여전히 금융업을 문턱이 높은 곳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특히 전 세계 인구의 20% 정도만 은행거래가 가능한 인구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80%의 인구는 그림 속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ICT기술 중심의 제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은행들이 ‘따뜻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 어느 은행이 고객들에게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가는 판단의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경섭 농협은행장이 지난 15일 신입행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슴이 따뜻한 금융전문가로 성장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이 행장의 주문이 처음은 아니다. 수년전부터 신한금융지주가 ‘따뜻한 금융’을 대표 브랜드처럼 사용해왔다. 금융업이 ‘따뜻함’에 집중하는 까닭은 소비의 대상이 사람이므로, 보다 감성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더 많은 금융권 CEO들이 ‘따뜻함’을 메시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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