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인구가 26.7%에 이르는 초고령 사회인 일본은 고령자 대부분이 일정수준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일본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데 특히 분별력이 떨어져 노후가 우려되는 고령자를 지원하기 위한 신탁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은행 송 훈 경영분석팀장은 초고령 사회인 일본의 고령고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신탁상품을 분석하며 국내 고령화 시장과 시중은행의 대응 방안을 짚어보았다.

◆일본노인 5명 중 1명 치매….고령자 금융사기 급증

일본의 총인구는 2015년 현재 1억2711만명으로 이중 65세 이상 인구가 3392만명(26.7%)에 이른다. 고령자 가운데 65∼74세 인구가 13.8%(1752만명), 75세 이상 인구가 12.9%(1641만명)로 후기 고령자의 숫자가 적지 않다.

일본은 2013년 현재 사회보장비용이 국민소득의 30.56% 수준에 이르렀으며 순수하게 고령자 관련 비용만 68.4%를 차지했다. 고령자의 건강문제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일본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발병자는 2012년 462만명에서 2025년 73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65세 이상 인구 중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일본은 판단력과 분별력이 떨어지는 고령자가 급증하며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금융사기와 악덕 상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에 있어서도 고령자의 자산을 보호할 방안이 절실해지고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고령자의 금융니즈를 크게 자산보호, 자산이전, 자산관리 3가지로 나눠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자산보호형 상품은 판단력이 흐려져 보유자산을 사기 당하거나 금융피해를 입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자산이전지원형 상품은 본인의 생활을 보장받으면서 손자녀는 물론 공익기관 등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기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자산관리형 상품은 자산의 증식보다 지급결제 등 안정적인 생활영위가 보다 강조된다.

일본의 신탁은행들은 고령자가 치매나 건강상태 악화로 판단력이 흐려져 보유자산을 사기 당하거나 금융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출 프로세스가 강화된 신탁상품을 개발했다.

자산보호형의 대표적인 상품은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시큐리티형 신탁(2015년 9월 출시)’, 쓰비시UFJ신탁은행의 ‘해약제한형신탁 미래 지킴이(2016년 6월 출시)’를 들 수 있다.

이 상품들은 신청자가 신탁회사의 지급청구서에 동의자의 동의를 받아 제출하면 신탁회사가 동의 여부를 확인한 후 지정된 계좌에 입금하는 프로세스다. 고령자가 비정기적으로 큰 규모의 자금을 인출하는 경우 대부분 금융사기에 의한 행동임을 고려해 동의자의 동의 절차를 추가한 것이다.

‘시큐리티형 신탁’의 특징은 치매가 심해져 판단 능력을 잃으면 계약할 수 없고 계약 후에 치매가 심해져 ‘성년후견제도’를 선택한 경우 계약이 중단된다. 계약이 중단되면 시큐리티형 신탁을 운영했던 신탁은행은 그 역할이 완료되고 남은 자금은 해지제한이 없는 일반금전신탁으로 옮겨진다.

‘후견제도지원신탁’은 치매가 심해져 금융활동이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대비하기 상품으로 고령자(수익자)의 신탁재산을 보호하고 신탁재산을 정기적으로 분할 교부해 고령자(수익자)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후견인이 치매자인 피후견인을 위해 신탁은행과 거래하는 일체의 중대한 내용에 대해 사전에 가정법원의 지시서가 있어야만 가입이 가능하며, 가정법원은 피후견인의 요양 간호, 재산관리 및 기타 후견사무에 대해 보고 및 지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은 지난 1999년 법정후견제도인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해 후견인이 은행 예·적금 관리, 해약 처리, 개호보험계약처리를 하는데 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친족 후견인이 재산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문제가 끊이지 않자 2012년 2월 후견인이 치매자의 재산을 마음대로 관리 및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후견제도지원 신탁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미쯔비시UFJ신탁은행, 미즈호신탁은행, 미쯔이스미토모신탁은행, 리소나은행 등에서 ‘후견제도지원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후견제도에 의해 지원을 받을 사람(고령자)의 재산 중 일상적 지출에 필요한 자금은 예적금 등으로 남겨 후견인이 관리하고 통상 사용하지 않는 자금은 신탁은행이 위탁·관리한다. 신탁 목적, 교부금 청구·인출 방법, 중도해약, 원본 보전, 예금자 보호대상, 가정법원의 관여 등 큰 골격에 대해서는 취급하는 모든 신탁은행이 동일하지만 신탁금액, 기간, 보수, 운용방법 등은 자율적 사항으로 은행 간 차이가 있다.

◆ 기부와 연금 연계한 신탁상품에 주목

지난 2015년 1월 일본 상속세가 개정되면서 일반 개인고객들도 상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자산이전을 목적으로 한 ‘유언대용신탁’이 등장했다.

유언대용신탁은 고령자의 상속재산 및 상속분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상품으로 신탁은행 입장에서는 상품의 특성상 계약기간이 길어 기존 거래고객과 관계를 강화하고 수익자인 자녀세대, 손자녀 세대를 고정 고객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쯔비시UFJ신탁은행이 2012년 3월 출시한 ‘계속안심신탁’은 2014년 2월 말 5만계좌를 달성하며성공적인 유언대용신탁으로 꼽힌다. 은퇴 후 계획적인 자금사용과 사후 가족에게 자산을 남겨주고 싶은 고령 고객을 타깃으로 출시된 이 상품은 고객의 상속에 대한 관심 증가와 적극적 대응이 성공 포인트로 평가받고 있다.

미쯔이스미토모신탁은행도 2013년 3월과 4월 중소기업체 사장을 위한 ‘자산승계신탁’과 개인 고객을 위한 ‘가족배려신탁’을 출시했다. 자산승계신탁은 유산분할 협의나 유언 집행 등의 상속 절차 없이 신탁계약 절차만으로 승계자에게 자산승계가 가능해 경영 공백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고 승계자를 변경하는 절차가 간단하다는 점이 매력 요소로 작용했다. 가족배려신탁은 고령자(위탁자) 사망 시 발생하는 장례비용과 유가족의 생활자금 등을 미리 준비해 가족의 긴급 대응을 배려하기 위해서 마련됐다.

특히 일본 신탁은행들은 고령 고객의 자산 이전 시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기부 니즈를 함께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특정기부신탁’은 위탁자(고령자)의 뜻대로 기부활동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금을 지급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상품으로, 신탁된 자금은 운용수익과 함께 공익법인 등 위탁자가 지정한 곳에 기부돼 공익을 위해 활용된다. 동시에 위탁자는 원금의 30%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으며 공익법인 등에 기부된 기부금은 확정 신고로 기부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미즈호신탁은행, 리소나은행,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 등에서 특정기부신탁을 판매하고 있지만 관리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보수가 무료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판매는 지양하고 있다.

◆일본과 유사하게 흘러가는 韓 고령시장

고령자의 자산관리는 자산의 증식보다는 자산의 원활한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일본 신탁은행은 고령자의 노후생활자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퇴직금 등 고령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을 활용해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분배형 신탁상품을 내놓았다.

미쯔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개인연금신탁 ‘마이라이프’는 신탁자금을 일시금이나 적립식으로 받아 계약 시 지정한 방식으로 정기 지급되는 상품이다.

일시금으로 신탁하기 위해서는 수령 기간을 포함해 5년 이상 만기일을 지정해야 하며 적립식으로 신탁하는 경우 6년 이상 만기를 지정하게 된다. 수령 기간은 차이가 있는데 일시금형은 5년 이상 10년 이하이며 적립식형은 수령 기간을 10년 이내로 하고 지급 방식은 3개월마다 위탁자가 지정한 방법으로 지불된다.

미쯔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나를 위한 연금신탁’도 100만엔 이상 일시금을 5년~25년 이내로 신탁기간을 계약한 후 매월 또는 격월로 26일에 일정금액을 수령하는 구조다. 신탁 설정 시 보수를 받지 않고 신탁자금 운용수익에서 운용보수를 수취하는 방식으로, 퇴직금 등의 목돈을 정기적으로 수령하길 원하는 고객이나 노후에 정기적인 소득원을 준비하고자 하는 고객을 타겟으로 만들어졌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유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고령자 증가와 함께 치매 유병율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 증가와 함께 기부 활성화에 대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은행업계에서도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지난 2011년부터 실버시장 선점을 외치며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고 전용창구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1년 하나은행이 ‘행복디자인’, 신한은행이 ‘미래설계센터’를 설립하고 2012년에는 국민은행이 ‘골든라이프’, 우리은행이 ‘100세 연구’ 등 은퇴금융 브랜드를 출시했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의 전망보다 빠른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며 이는 총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는 금융기관들의 대응을 재촉하고 있다.

송 훈 국민은행 경영분석팀장은 “시중은행은 고객의 라이프 스테이지와 단계별 니즈에 집중한 상품 라인업을 맞춤형 상품으로 묶어 제공해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교차판매를 증가시키고 고객의 밀착지원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며 “고령화의 물결은 피할 수 없으며 이는 금융기관에 있어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은행은 고령화 시장을 수익의 기회로만 보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고객과 상생하는 은행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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