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가득 덮인 붉은 벽돌집 술도가, 1958년 지어져

TV예능 프로 소개 뒤 ‘순대’와 함께 지역 명소로 부상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붉은 벽돌로 지은 단정한 이층집. 외벽에는 담쟁이덩굴이 제 집 인양 바탕을 가득 덮고 있다. 한눈에 봐도 건물은 강한 존재감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시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스토리는 건물 1층 현관 위 박돌에 적혀 있는 ‘양조장’을 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어디를 봐도 술도가의 외양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북 예천 용궁면에 자리한 한적한 시골양조장 이야기다. 예천은 그 지명에 술의 고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단술 예(醴)자와 샘 천(泉). 달디 단 물이 나온다는 고장을 뜻하는 것이다. 얼마 전 복원한 삼강주막도 예천에 있다. 그리고 용궁면에 자리한 붉은 벽돌의 용궁양조장도 전체 주류 유통량의 70%에 달했던 막걸리 전성시대였던 60~70년대의 술도가가 지닌 위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까닭에 경상북도에선 이 양조장을 최근 향토뿌리기업이자 산업유산으로 지정해 특별하게 관리에 나섰다. 향토뿌리기업은 경상북도가 30년 이상 전통산업을 이어오면서 지역 발전에 기여한 산업문화적 가치를 가진 사업체에게 부여하는 이름이며 산업유산은 산업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에게 지정해왔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용궁양조장에 들어와 술 배달로 막걸리 양조 업계에 들어온 권순만(71) 대표는 현재의 양조장 건물이 1958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권 대표는 현재의 양조장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도 이 터에 양조장이 있었으며, 그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고 말한다. 당시 이 건물의 1층은 현재처럼 술을 빚는 양조 공간이었고 2층은 사무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무공간을 별도로 둘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의 양조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예천의 한적한 시골 읍내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양조장 건물은 당시 용궁면에서 한손에 꼽을 수 있는 2층짜리 양식건물이 아니었을까싶다.

권 대표의 용궁양조장이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사실, 우연하게 TV 예능프로그램을 타면서이다. 당시 술도가를 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시절, ‘1박2일’에 소개된 담쟁이덩굴 가득 덮인 용궁양조장은 당시 소개된 ‘순대’집들과 함께 지역의 명소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역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술도가가 버텨낼 힘을 찾게 됐고, 밀가루로 만들던 막걸리도 쌀막걸리로 변신하게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양조장은 찾는 이 모두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한다. 물론 안주로 왕소금 그릇이 놓여 있다. 목이 말라 한잔 마시는 예의 그 막걸리를 용궁에선 지금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직접 입국을 띄어 양조하는 그의 술맛의 비결은 물에 있다고 한다. 대개의 오래된 양조장이 그런 것처럼 이곳도 술도가 안에 우물을 가지고 있다. 동네 사람들까지 찾아 떠갈 정도로 물맛이 좋다고 소문난 곳이니 술맛도 깔끔하다.

막걸리 원주를 한잔 할 수 있냐는 기자의 말에 권 대표가 잠시만 기다리란다. 그리고 커다란 국자 가득 진땡이(막걸리 원주를 칭하는 말, 다른 말로 모로미)를 떠와 한잔을 퍼 주신다. 양조장의 막걸리는 보통 13~16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데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는 이 원주에 물을 타 6도로 희석된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양조장에선 진땡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유는 떠낸 만큼 물의 희석비율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 대표는 잠시잠깐의 귀찮음도 보이지 않고 한잔 가득 건네준다.

물로 희석되기 이전의 용궁의 진땡이는 진한 알코올감과 걸쭉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쌀막걸리 고유의 단맛까지 가지고 있다. 예천 여행길에서 순대와 즐기기 좋은 찰진 막걸리 한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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