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만큼 굼뜬 조직, 기존 인사정책으론 한계 노출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 취임 후 ‘변신’ 메시지 반복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춘추전국시대 초기부터 있었던 나라 중에 ‘송(宋)’나라가 있다. 황하와 장강 사이, 지금의 하남성에 자리한 송나라는 주나라 왕실과 같은 왕족이었다. 그런 까닭에 개국공신인 강태공의 나라, 제나라 작위(후작)보다 높은 공작(公爵)을 작위로 받게 된다. 주 왕실과 같은 핏줄이었던  송나라는 법도와 규범을 최우선으로 치며 다스려졌으나, 춘추 오패에도 들지 못하고,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약소국을 면치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송나라는 제자백가들의 ‘고전’에는 우둔함의 이미지로 자주 묘사되고 있다. <장자>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등장한다. 장보라는 장사꾼이 있는데, ‘소요유(逍遙遊)’편에 따르면 그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모자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송나라야, 주 왕실에 걸맞은 예의범절을 위해 좋은 모자가 필요했지만 장강 하구에 있는 더운 월나라에선 모자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사치가 벌인 일치고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비자>에 등장하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도 송나라 농부가 주인공이다. ‘오두(五?)’편에 따르면 이 농부가 밭을 가는데 갑자기 토끼가 달리다가 밭 한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었다고 한다. 그 후론 잘 아는 것처럼 이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만 지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춘추전국 시대의 고전들에서 송나라 사례를 통해 지적하려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끊임없는 변화와 변신이었다. 극한의 경쟁을 벌이면서 살아남으려 했던 춘추전국의 사람들은 기존 관습에 얽매여서는 얻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춘추전국시대의 책들이 여전히 낙양의 지가를 높이며 스테디셀러로 자리하는 것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이 기존 인사운영방식을 완전히 바꿔달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최근 가진 임원회의에서다. 이유는 케이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까지 새롭게 등장한 은행들의 돌풍이 거세기 때문이다.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지점이 다른 두 은행은 유난히 더운 올 여름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런 까닭에 윤 회장이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주문을 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윤 회장은 지난 2014년 취임 이후 줄곧 ‘혁신은 인사에서’시작된다고 말해 왔을 정도로 인적 쇄신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더불어 DNA가 다른 은행들과의 경쟁을 위해 전 직원을 정보통신기술과 관련, 특화시키는 인사정책을 펴겠다고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이날 임원회의에서 윤 회장은 “금융산업의 디지털화, 업종간 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변화의 물결에 잘 대응해야 한다”며 “조직의 핵심은 사람이므로 인사 방식도 이 같은 흐름에 맞는 기민함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마디로 윤 회장의 메시지를 정리하면 ‘기민한 변화’이다. 기존 인사원칙으로는 기민성을 발휘할 수도, 변신을 시도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새로 진입한 은행보다 수십 배 큰 덩치를 가진 은행. 그래서 덩치에 비례해서 굼뜰 수밖에 없고, 그만큼 변신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더욱 ‘기민한 변화’에 초점을 맞춰 메시지를 구사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은행원들은 그루터기에 자폭하듯 달려와 부딪칠 토끼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격식을 차릴 모자가 필요 없다면 과감하게 벗어던질 줄도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송나라 사람들을 빗댄 고사가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위해선 근육에 새겨져야 한다. 겉만 알고 한 행위는 일회성에 그치고 만다. 윤 회장이 변신에 대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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