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카메라가 기존 세계 허물고 새로운 세상 열었듯이

핀테크·모바일, 근사한 포장재가 아닌 핵심 엔진으로 안착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500년 전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만성교회 정문에 95개조의 요구 조건이 담긴 대자보가 내걸렸을 때 교회의 분열은 물론 유럽 대륙이 피로 물들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자보를 내걸었던 마르틴 루터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몰고 올 충격을 알지 못했으며, 그의 행동이 교계의 입장에서 결코 새삼스러운 행동도 아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 한 사람이 학술지에 다소 도발적인 시각을 담아 자신의 의견을 전한 논문 한편을 발표한 것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자보는 교회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리시켰으며, 전 유럽을 양분시키는 한편 종교의 이름 아래 대륙을 피로 물들였다. 그것도 유럽 각국의 군대가 참전하는 세계대전의 성격으로 진행시켰으며, 그 전쟁의 결과는 유럽의 ‘근대’였다.  

이와 관련, 영국의 철학자 스티븐 툴민은 그의 저서 <코스모폴리스>에서 30년 전쟁을 ‘공동묘지’라는 단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독일 인구의 3분의 1인 800만 명이 이 전쟁기간 중에 죽었으니 이만큼 적확한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어찌됐든 당시 유럽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던 독일을 희생양 삼아 근대의 길로 접어든다. 

1826년 빛에 반응시켜 촬영하는 기술을 응용된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무도 회화의 변신을 예고하지 않았다. 조세프 니에프가 석판화를 이용, 감광재를 바른 유리에 창문 너머 보이는 바깥 풍경을 담았을 때까지 회화가 가진 ‘모사’의 기능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회화=거울’이라는 등식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전진한다. 카메라의 기능이 개선되면 될수록 카메라가 담아내는 바깥 풍경과 인물사진은 더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모사’가 더 이상 회화의 미덕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이 회화를 사망시킬 것이라는 일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회화가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과 ‘다르게’ 묘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생명이 회화에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재현이 아니라 ‘구성’이 새로운 미덕으로 칭송받으면서 회화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루터와 카메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과 사물이다. 하지만 이 둘은 기존 세계관을 뒤흔들고 세상을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를 던져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도사 한 명이 던진 ‘면죄부에 대한 공개질문’과 원근법과 정확하게 보이는 세계를 모사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위기의 순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금융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상상했지만, 그 이상의 후폭풍에 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케이뱅크의 심성훈 행장은 지난 4월 은행의 공식 출범식에서 “금융시장의 혁신은 물론 제4차 산업혁명의 ‘메기’가 되겠다”고 말했지만, 최근 카카오뱅크가 오픈하면서 두 인터넷 전문은행은 메기 그 이상이 된 것이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비대면 채널 확충과 앱 편의성 제고에 들어갔으며, 요지부동이었던 금리와 수수료 인하까지 단행한 것만 보더라도 그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

물론 자본금의 한계로 지난 3개월간 대출을 중지해야 했던 케이뱅크의 사례처럼 인터넷전문은행의 갈 길은 멀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이 보여주는 시장의 순기능은 은산분리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어찌됐든 은행업을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한 인터넷전문은행은 메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상어가 돼 기존 시중은행을 위협하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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