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은 청주의 일반명사 아니라 日 청주 브랜드 중 하나일 뿐

 국순당 ‘예담’, 경주법주 ‘화랑’, 술샘 ‘그리움’ 등 전용주 시판 중

▲ 누룩과 쌀로 빚는 전통주 방식으로 각종 제례에 사용할 수 있는 술이 전통주업체를 통해 발표되고 있다. 사진은 좌측부터 술샘의 ‘그리움’, 경주법주 ‘화랑’, 국순당의 ‘예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창업 초창기의 혼란을 벗고 안정의 발판을 놓은 조선의 국왕은 잘 알고 있듯 세종이다. 세종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국가의 주요 행사 및 외국 사신 방문 때 사용하는 종묘제례악은 세종 집권기까지도 아직 정비되지 않았었다. 중국 사신들이 방문 때마다 시비를 걸었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은 박연을 통해 아악을 정비시킨다. 그리고 정비된 아악(궁중음악)과 향악(고유음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종은 살아서는 조선의 음악을 들었는데, 죽어서 남의 음악을 듣는 것은 이치에 안 맞는다며 향악을 살릴 것을 지시한다. 유교적 가치에서 출발한 제례와 차례 등 봉제사(奉祭祀)를 중시하면서도 실용의 끈을 놓지 않은 솔로몬의 지혜와도 같은 결론이다. 

그렇다면 봉제사와 관련한 술은 어떠할까.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당한 우리는 1905년 발표된 주세령에 따라 집에서 빚던 가양주의 전통을 빼앗기게 된다. 주세를 통해 조선의 통치자금을 형성했던 일제가 초창기에 걷어들인 주세는 국세의 70%에 달했다고 하니, 주세령과 주세법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 봉제사와 접빈객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민족의 정체성을 밝혀주었고, 그리고 현재도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문화다. 그래서 수천년 동안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온 가양주는 그 집안의 식문화를 유지시킨 뿌리였으며, 관혼상제 등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시킨 원동력이 돼 줬다.

일제에 의한 법과 제도에 의해 가양주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무서운 속도로 메운 술은 일본의 청주였다. 일본식 청주의 특징은 우리의 누룩 대신 일본식 쌀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정종’이라고 알고 있는 술은 이 청주의 브랜드 중 하나였으나 일제강점기 국내에 널리 소개되면서 마치 일본 청주를 일컫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73년째 입국을 이용해 술을 빚고 있는 롯데 주류의 ‘백화수복’을 우리 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내 주세법 상 명실상부하게 ‘청주’라는 타이틀로 분류되는 술이자, 국내 차례주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토착화가 이미 끝난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누룩을 쓰지 않은 점, 그리고 일본식 청주와 같은 깔끔한 단맛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 식 청주(주세법 상 약주)는 일본처럼 쌀을 많이 깎지 않고 담는다. 따라서 쌀의 단백질과 지방질 등이 발효과정에서 다양한 향과 풍미를 만들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 술은 쌀이 가진 달보드레한 맛이 혀에 여운을 남기는 특징을 갖는다.

앞서 세종의 종묘제례악의 사례처럼 살아서 즐기는 음악과 죽어서 듣는 음악이 서로 다를 수 없듯이 살아서 즐긴 술과 죽어서 추념하는 술이 서로 다를 수 없다. 일제의 주세령과 산업화 과정에서 식량 부족으로 집행된 양곡관리법에 따라 문화로서의 가양주가 안타깝게도 사라졌지만, 최근 20년 동안 그나마 복원되어 우리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은 우리 술이 여럿 등장한 상황이다.

추석 한가위가 발치에 와 닿았다. 그동안 몰라서 찾지 못했고, 그래서 차례상에 올리지 못했다면, 이번 추석 때부터라도 우리 쌀과 누룩으로 빚은 우리식 청주를 상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종묘에서 치루는 종묘대제에 11년째 같은 제례주가 상에 오른다. 국순당에서 제례주 전용으로 만든 ‘예담’이 바로 그 중인공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전래됐다는 술 제조법으로 빚고 있는 경주법주에서 순 찹쌀로만 150일 동안 발효 숙성시킨 ‘화랑’도 근사한 제례주이다. 이와 함께 올해 찾아가는 양조장 ‘술샘’에서 차례 전용주로 개발한 ‘그리움’과 십 수년째 전통의 우리 술 제조 비법에 따라 빚고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탁·약주 포함)들도 좋은 차례주가 될 것이다. 그동안 몰라서 올리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찾아서 우리 술을 차례상에 올리면 좋을 듯싶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