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소비자보호부 조경신 과장

 

어느 날 오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중앙지검 김모 수사관이라고 하며, 필자의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필자의 생년월일, 주소 등을 정확히 읊어나갔다. 물론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이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기승을 부리던 고전적 수법의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이제는 보이스피싱이나 대포통장이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1037억원이며, 피싱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의 수도 2만981개나 된다. 물론 범정부적 보이스피싱 예방대책 시행 및 홍보 강화로 과거에 비해 피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나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필자가 경험한 소위 정부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아닌,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대출상담을 가장해 접근한 뒤 신용등급 상향비, 보증료 등을 요구·편취하는 방식 또는 고금리 대출을 받으면 저금리 대출로 바꿔준다고 기망해 고금리대출 상환 명목으로 대출금을 편취하는 방식의 사기수법이다. 이밖에도 PC나 스마트 폰에 악성코드를 감염시키는 파밍(Pharming),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피싱인 스미싱(Smishing), 최근에는 QR코드를 이용한 피싱인 큐싱(Qshing)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도 복잡 다양하다. 

이처럼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경각심’ 이다. 실제로 사기 피해자 중엔 교사, 경찰, 고위공무원 등 쉽게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도 많다. 물론 교묘하고 다양해진 사기수법 탓이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각종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만 잘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소중한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첫째, 정부기관은 절대 전화로 금전이체 요구를 하지 않는다. 둘째,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대출광고엔 절대 응하지 않는다. 셋째, 출처가 불문명한 파일, 이메일, 문자는 바로 삭제한다. 넷째, 자녀납치·협박 전화를 받았을 경우, 주변 도움을 받아 자녀안전을 우선 확인한다. 다섯째, 금융거래 시 OTP와 같은 보안성이 높은 매체를 사용한다. 여섯째, 타인에게 절대 개인정보(금융거래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보이스피싱 피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정부기관 및 금융회사의 노력 없이는 피해근절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농협은행은 2013년만 하더라도 대포통장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당시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농협은행 대포통장이 전체 금융회사 중 21%에 달했다. 이후 농협은행은 2014년 4월,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대고객 홍보활동 강화 및 의심계좌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용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6년도엔 금융감독원이 선정한 ‘금융사기 근절 최우수 기관’이 됐고, 2017년도 8월 말 기준 농협은행 대포통장 점유비는 3%에 불과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보이스피싱! 국가기관, 금융회사, 나아가 국민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지금은 요원할 것만 같은 보이스피싱 척결이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