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 국민은행장 선임, 또 다른 KB의 권력 분점 스타일 창출

‘KB사태’의 부정적 이미지 극복 위해 “윤 회장 철학 따르겠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권력은 속성상 구심력을 강화하고 원심력을 제어하려 한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균형은 구심력과 원심력의 힘이 같을 때 이뤄진다. 어느 쪽이든 힘이 세지면 균형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한 권력의 교체과정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등의 이야기는 구태의연하다. 권력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어진 현실은 흐름의 개념이 아니라 순간의 개념일 뿐이다. 그래서 ‘내일’이나 ‘미래’의 권력이라는 용어는 공허할 뿐이다. 권력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긴장하고 주변을 제어한다. 2인자와의 관계는 특히 더 그렇다. 권력을 나누는데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나누다 실패하는 경우는 대부분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역사 속에서 권력을 나누다 실패한 경우는 매우 많다. 로마의 경우 두 명의 황제가 공동으로 통치한 공동황제가 여럿 있다. 심지어 네 명의 황제가 통치를 한 경우도 있다. 로마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16대 황제 마르쿠스는 원로원의 뜻과 달리 전임 황제의 양자인 루키우스와 동등한 권력을 갖는 조건에서 황제직을 수락한다. 본인이 원해서 권력을 분점한 경우다. 권력지향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겐 ‘두 개의 태양’은 매우 낯설다. 권력을 나누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그 결과는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자신의 뜻대로 두 명의 황제에 의한 공동 통치에 들어간다. 이유는 홍수 등 자연 재해에 의한 기근과 변방 이민족의 계속적인 국경 도발이라는 이중의 국정과제가 로마의 근간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각의 과제를 나눠서 해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어쨌든 로마의 권력분점은 리더십과 관련,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성공적인 분점이 가져온 장점과 황제간의 갈등에 의한 독살 등의 비극적인 결과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비록 로마의 공동황제직이 무너져가는 로마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과 같은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KB국민은행장이 선임됐다. 3년만의 일이다. 은행의 영업그룹을 맡고 있던 허인 부행장이 은행장으로 취임했다. KB금융의 윤종규 회장과 손발을 맞춰가며 신한은행과의 치열한 리딩 경쟁을 이끌어야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KB사태’라고 일컬어지는 아픈 상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3년전 그룹 회장과 은행장간에 벌어진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해 은행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오랜 동안 은행을 비롯해, 지주 계열사 모두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허인 행장도 지난 주 소감을 묻는 언론에게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잘 보좌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보좌의 범위는 ‘윤 회장의 (경영) 철학’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서 불필요한 구설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워딩이다. 자연스럽다. 

역사 속의 2인자들은 길고 고단한 터널을 통과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다다랐다. 허 행장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리더십이 유무형의 자산이 되면서 공고히 다져지게 된다. 물론 임기가 2년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리딩 경쟁을 벌이는 두 은행의 향후 행보가 허 행장 선임으로 더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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