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인 대표, 효모에게 클래식 음악 틀어주며 막걸리 발효·숙성

기존 6·9·12도 3형제에 15도 프리미엄버전 추가해 라인업 확대 

▲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생산해내는 효모가 좋은 음악을 들으며 발효숙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해남에 있는 해창양조장 오병인 대표는 자신이 젊은 시절 수집했던 오디오로 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해남으로 내려오기 전 그의 취미는 고상했다.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오픈 릴 테이프 방식의 데크와 각종 앰프, 그리고 필름 영사기 및 오래된 필름 카메라 등 한결같이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했다. 보고 듣는 취미가 아날로그다보니, 물건 값들도 제법 나가보인다. 비싼 오디오 기기나 카메라 구입을 두고 부인과 실랑이 한두 번은 자연스럽게 벌어졌을 것으로 여겨질 만큼 해남에 있는 해창주조장 한편에는 그의 수집벽의 결과물들이 가득하다.

연초에 찾았던 해창주조장(2017년 1월31일자 기사 참조). 우리나라에 있는 양조장 중 가장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며,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양조장을 다시 찾았다.

가을햇볕이 내리쬐는 해창의 멋진 정원도 보고 싶었고, 술도가를 묵묵히 지키며 막걸리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오병인 대표와의 한 잔 술이 그리웠기도 했다. 물론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알코올 도수 15도의 ‘해창 롤스로이스’를 맛보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 이유도 있다.

택배로 받아마시던 해창을 인수한 뒤 오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보통의 양조장처럼 6도짜리 막걸리만을 생산해왔다. 당시 오 대표의 고민은 미량이나마 들어가던 아스파탐을 넣지 않아도 마실 수 있는 ‘건강하고 맛있는’ 막걸리 생산에 꽂혀있었다. 결국 지난해 아스파탐 프리 선언을 한데 이어 9도와 12도짜리 막걸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해창주조장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하나의 막걸리 원주를 빚어 발효가 완료된 술을 물로 희석시켜서 알코올 도수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표 도수를 정하고 별도로 빚는 방식으로 각각의 버전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창의 술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목표 도수가 다르듯, 각 버전별 막걸리의 생산방법도 다르다. 6도짜리는 찹쌀과 멥쌀이 각각 5대5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리고 9도와 12도는 찹쌀과 멥쌀의 비율을 8대2로 정해 빚어진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해창 15도도 찹쌀의 비율이 마찬가지로 높다. 기존 9도와 12도 막걸리와의 차이점은 숙성기간이 30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숙성기간의 차이는 알코올감 이상의 차이점을 만들었다. 15도의 알코올감은 시판되는 주세법상 약주들이 가지고 있는 알코올 도수이다. 약주에 비해 되직할 정도로 바디감이 강하면서, 단맛을 내는 15도 ‘롤스로이스’. 흔히 해창의 막걸리를 ‘드라이’하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막걸리는 ‘드라이’함보다는 ‘풀바디’함에 방점이 찍혀있다. 단맛과 쓴맛, 그리고 묵직함이 잘 균형 잡혀 있는 술이다.

▲ 해창주조장의 술을 즐겨마시는 지인이 오병인 대표에게 선물로 준 그림에는 해창의 아름다운 정원과 역사유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물론 오 대표와 부인 박리아 여사의 온화한 얼굴도 그림에 그려져 있다.

왜 ‘롤스로이스’냐고 묻는 질문에 오 대표는 막걸리의 명품을 지향했고, 그런 술을 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한 막걸리가 아니라,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해창만의 방식으로 고급스러운 막걸리를 빚었으니,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고급 승용차의 브랜드명이라 우스갯소리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한번 들으면 잊지 않게 되는 장점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오 대표는 늦은 밤을 제외하곤, 자신의 오픈 릴 테이프에 담은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을 틀어놓는다. 발효·숙성실에서 익어가는 술이 들을 수 있게 틀어놓은 것이다. 효모들이 듣고 기분 좋게 당분을 섭취하고 알코올을 만들어달라는 그 나름의 제조방식이다. 늦은 저녁 주조장을 방문했을 때도, 그리고 아침 일찍 정원을 보기 위해 찾았을 때도 음악은 그치지 않고 정원을 채우고 있었다. 효모를 가까운 친구처럼 호칭하는 오 대표의 술들은 이렇게 좋은 음악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도 여행길에 정원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 없는 술맛을 보기 위해서 찾을 만한 양조장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