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바꿔낸 현명한 대중, 외압 없는 건강한 은행문화 요구

감독당국과 정치권력, ‘감독’과 ‘관치’ 사이의 기준 명확히 해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한중일 3국과 정상외교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자국 내 반응은 여전히 시니컬한 것 같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형식미 넘치는 의전에 힐링했을 것이라는 전 미 국무부 차관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중대발표하는 형식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관철했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 결과에 대해 미 언론들은 ‘구체적 성과가 없다’는 식의 차가운 반응 일색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30%의 낮은 지지율. 트럼프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본 태도는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지율의 근저에는 정치권과 언론 및 지식인과의 불편한 관계가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다. 

한일 양국의 의전에서 힐링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 전 미 국무부 차관은 타임지 편집부국장을 역임하고 우리에게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 리처드 스텐걸(62)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리버럴’이므로 트럼프를 저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보면, 단지 이념적 잣대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트럼프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선데이〉에서 보도한 스텐걸의 인터뷰 기사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대목이 있어 소개하기 위해서다. 

“마케팅은 아부의 상업화다. 대중이 전문에 나선 시대에 기업의 이미지는 한 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 이제까지 마케팅에서 과장은 어느 정도 용인됐다. 이제는 아니다. 구체적이고 사실과 가까운 마케팅 용어로 소비자(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대중이 똑똑해져 말장난이란 게 금방 드러날 아부를 싫어한다.”

정치적 메시지가 아부라는 스텐걸의 설명에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같은 함의를 지닌다고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은 아부의 귀재라고 말한다. 물론 그의 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한다. 그래야 표를 얻고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은 아부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부라는 것이 ‘아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한 화술로 이해하면 더욱 그러하다.  

스텐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것은 아부 그 자체를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방점은 대중이 똑똑해졌다는데 있다. 부패한 권력을 시민들의 힘으로 교체시킬 만큼 대중은 현명해져 있고, 권력의 주인으로 역할하고 싶어 한다.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에서 토크빌의 말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벼랑까지도 기분 좋게 배를 타고 간다”고 말한다. 위태로운 벼랑도 자신들이 리스크를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시민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지난 10여년, 국내은행들은 정치적 퇴행을 거듭했다. 정치권 줄대기에 여념이 없었던 은행장과 임원들의 모습은 은행장 사퇴와 구속 등의 사건으로 여러 차례 표면화되기도 했다. 각성한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역할을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은행의 문화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부를 원하는 정치권의 태도도 아직 크게 변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바뀐 정치권력에게 건강성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감독’과 ‘관치’를 뚜렷하게 가르는 경계를 보여주진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 시작은 우리은행 등 향후 은행장 인사가 될 것이다. 얼마나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는가가 그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명한 대중들은 거래하는 은행이 자신의 돈을 안전하게 관리해줄 것을 원한다. 정치적인 입김에 좌우되지 않고, 시장 논리를 우선하는 은행의 태도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건강한 금융은 감독당국과 정치권력의 손에 달려있다. 그래야 은행들이 정치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고객에게 아부하는 시대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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