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간담회 통해 ‘현 정부와 결이 달라’ 협회장 재선 불출마 밝혀

역린 건든 황 회장 의사 표명,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목적 느껴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전국시대의 사상가 중 가장 불우한 삶을 산 사람을 고르라하면 주저 없이 ‘한비’를 들 것이다. 한비를 중용하고자 했고, 그의 주요 사상인 법가를 통치 이념으로 취한 시황제가 전국시대를 정리하고 최초의 통일중국을 일궈냈지만 그는 친구 덕(?)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의 책 《한비자》는 그래서 한 꺼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의 불우했던 삶의 원인과 괴로움의 원천 등을 읽어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말의 어눌함이었다. 그는 어눌한 말투를 자신의 변론술 부족으로 이해했으며, 이를 유세의 어려움으로 연결한 ‘세난(世難)’을 설파했다.

“무릇 유세의 어려움이란 내 지식으로 남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요. 또 내 말솜씨로 내 의견을 온전히 다 밝히기가 어렵다는 뜻도 아니다. (…) 무릇 유세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고 거기에 내 의견을 맞출 수 있는가에 있다. 설득할 상대가 명예와 절개를 지킬 의도로 나왔는데 많은 이득을 미끼로 그를 설득한다면, 설득자의 지조를 얕잡아보고 천박하게 대한다 하여 반드시 버리고 멀리 할 것이다.”

즉 설득의 기술 부족보다는 설득의 대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춘추전국 시대의 유세 대상은 왕(또는 공)이었지만 주권재민의 세상에선 유권자들이 대상이다. 설득자의 생각과 기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중요하지만, 왕의 마음이나 유권자의 생각을 바르게 읽어내지 못하면 설득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유세의 결과가 달라지므로, 간언하는 자는 군주 또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들고 있는 비유가 ‘역린(逆鱗)’이다. 건드리면 안 되는 용의 비늘, ‘역린’. 반대 방향으로 난 비늘이니 결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건드리면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 역린이다. 한비는 역린의 비유를 통해 유세의 어려움과 설득자가 반드시 피해야할 것을 강조한다.

요즘 금융권 인사의 어록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이 “결이 다르다”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지난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재선 포기를 언급하면서 “내가 살아온 과정과 현 정부 인사들과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당선이 확실시되던 협회장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시장주의자로 시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현 정부는 시장이 위험하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강한 정부, 큰 정부 중심으로 돌아가 다소 결이 다르다고 판단했다.”황 회장의 이어진 설명이다. 

황 회장의 기자간담회는 일종의 유세다. 유세는 설득의 대상과 목적이 전제돼 있다. 협회장 선거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설득의 대상은 회원사가 될 것이고 설득의 목적은 협회장 재선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목적을 포기하는 유세를 펼쳤고, 그것도 ‘결이 다르다’는 것을 공식화하면서 속내를 드러냈다. 

한 마디로 남들이라면 유세하지 않았을 내용을 활짝 펼쳐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 배경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견지망월(見指望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없어도 될 절차를 거쳐 가며 황 회장이 자존감을 확인했다면 유세의 보이지 않는 목적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그렇다면 그의 지난 재임기간은 결이 같아서 재임했던 것인가’이다. 결국 어느 방송사의 앵커 브리핑에도 이 대목은 등장하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피해야할 역린을 건들면서 발언한 황 회장의 유세의 이면에 정치적 목적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견지망월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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