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맥주 찾아, 시나리오 작가 포기하고 양조자 길 나서

정현철 대표, 로컬푸드 같이 지역밀착형 크래프트 문화 지향

▲ 더 맛있는 맥주를 딜리버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미국의 단기맥주강좌까지 찾아 들었었던 ‘브루원’의 정현철 대표, 사진은 크래프트원에서 탭으로 맥주를 따르는 정 대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생맥주 맛이 심심해 ‘물탄 것 아닌가’하는 오해를 하던 때가 있었다. 생맥주 유통 및 펍에서의 관리 소홀이 맥주 맛을 변질 시킨 탓이다. 여기에 맥주를 따르는 장치인 탭 연결장치를 얼마나 자주 청소하느냐도 술맛을 좌우하는 요소인데, 예전에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자연스레 ‘물탄 듯’한 맥주를 마시게 된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음식과 맥주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생맥주 전문 펍을 낸 뒤 이제는 맥주 양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지난 2015년 고양시에 브루어리를 낸 브루원의 정현철(43) 대표가 그 주인공. 보다 맛있게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수제맥주 시장에까지 뛰어들게 한 이유가 된 것이다. 정 대표는 수제맥주 붐이 아직 일기 전인 2011년, 홍대 인근에 ‘펍원’이라는 맥주집을 연다. 당시 그의 고민은 신선한 맥주 맛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 이에 호텔 펍 등 고급스런 술집에서나 사용하던 케그(20리터 들이 맥주 저장장치) 전용냉장고를 매장에 설치하고 맥주의 신선도를 최적으로 유지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홈브루잉(집에서 맥주 만들기) 및 맥주 양조의 경험을 가진 외국인들이 중심이 돼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을 조성하던 2013년, 그는 ‘크래프트원’이라는 수제맥주 전문 펍을 열고, 자신의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들이 주도하는 수제맥주 문화를 우리식으로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었다. 

기왕에 펍을 운영하고 있던 정 대표는 자신의 맥주를 머릿속에 그리며 홈브루잉 1세대에 합류한다.

어메이징브루어리의 김태경 대표와 미스터리 브루어리의 이인호 대표 등과 함께 서울의 한 공방에서 우리 입맛의 맥주를 그려나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맥주는 “목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쓴 맛이 덜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당시 경리단길에서 팔던 미국식 수제맥주는 맥주에 지나친 개성을 부여했다고 그는 해석했던 것이다. 이 때 20여 차례나 레시피를 변경해가며 만들어낸 술이 미국식 밀맥주 스타일인 ‘밍글’, 홉의  쓴맛은 줄이되 향은 돋우어 에일 계열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맥주다. 그리고 밍글은 크래프트원의 주력 맥주 중 하나가 된다.

▲ 연남동과 이태원 등 수제맥주를 전문으로 하는 탭하우스에 원할하게 맥주를 공급하려면 거리가 가까워야한다고 생각한 정 대표는 2015년 고양시에 브루어리를 마련한다. 사진은 브루어리 내부 전경.

이렇게 자신이 해석한 수제맥주는 결국 2015년 브루어리로 연결된다. 독일(베를린 VLB양조학교)에서 맥주를 공부하고 돌아온 류지은 이사를 ‘맥만동(맥주만들기동호회)’에서 만난 뒤 본격적인 양조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태원 및 연남동 등 서울의 주요 펍과의 유통 접근성을 고려해 고양시 외곽에 부지를 물색하고 발효·숙성조 12톤 규모의 브루어리를 만든 정 대표는 자신이 해석한 맥주의 폭을 넓혀간다.

정 대표의 맥주가 추구하는 가치는 ‘로컬푸드’로서의 맥주다. 수제맥주 본연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싶은 까닭이다. 또한 지역과의 연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반영된 맥주가 ‘연남에일’. 연남동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맥주에 담아내는 한편 이 맥주의 수익 중 일부는 지역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40만원 정도를 전달했고, 올해는 매출이 늘어 두 배 정도를 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정 대표의 생각은 연희동에 만든 ‘케그스페이션’에도 연장된다. 동네에서 생맥주를 구입해서 집에서 마실 수 있도록 수제맥주 테이크아웃을 목적으로 지난해 문을 연 것이다. 

이처럼 동네에서 크래프트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파고드는 전략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정 대표도 아직은 모른다. 다만 더 치열해지는 수제맥주 시장에서 브루원과 크래프트원이라는 브랜드로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모색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술맛이 홉의 쓴맛보다는 향과 몰트의 고소함에 치중하는 이유도 어쩌면 지역에 뿌리내리는 그의 크래프트관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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