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해 있던 A씨는 정기예금에 맡겨뒀던 본인의 퇴직급여를 펀드로 변경하기 위해 금융기관 홈페이지를 방문했지만 너무 많은 펀드 종류에 펀드 투자를 포기하고 말았다. 바쁜 직장인이었던 A씨는 수많은 펀드를 일일이 검토할 시간도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TDF 등 자동자산배분 상품으로 수고 덜어

연금 가입자 입장에서 투자대상 자산이 다양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 투자대상이 많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선택할 게 많다 보니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연금자산 투자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의 위험성향, 소득, 자산, 건강상태, 은퇴까지 남은 기간 등을 살핀 다음 경제환경과 주식시장 동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산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주식과 채권, 대체자산과 같은 투자자산 비중을 결정한 다음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을 좇아 소극적인 투자 방법을 택할지 주식시장보다 나은 수익을 추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펀드를 선택하는 단계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투자할 펀드를 골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다음에도 여러 가지 할 일이 남아있다.

투자하고 있는 펀드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할 경우 그때그때 펀드를 교체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포트폴리오의 위험자산 비중을 재조정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아 비중이 커진 자산을 처분하고 비중이 줄어든 자산은 추가로 취득하는 일도 필요하다.

연금으로 투자 가능한 상품은 수없이 많지만 해당 상품이 주로 투자하는 자산군이나 고유 특성을 기준으로 묶어보면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주식형 펀드 같이 한 종류의 자산군에 투자하는 상품이 있다. 이러한 상품은 전통적인 자산군인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전통자산’ 투자상품과 부동산이나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자산에 투자하는 ‘대체자산’ 투자상품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자산 투자상품은 ‘주식형’과 ‘채권형’으로 구분되며 그 안에서도 수많은 세부 유형으로 나눠진다.

여러 종류의 자산군에 투자하는 상품도 있다. 두 개 이상의 다른 종류의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형태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일반 혼합형 펀드’,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멀티에셋 펀드’, 서로 다른 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 등이 포함된다.

ETF는 주로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로 최근에는 다양한 지수가 개발돼 ETF만으로도 자산 배분을 할 수 있게 됐다. AI가 운용하는 ETF도 있으며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알아서 한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연금자산관리에 충분한 시간을 쏟을 여유를 가지긴 힘들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시간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직장인들은 연금자산을 투자할 상품을 고를 때 전문가에게 간단한 도움을 받더라도 이후부터는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금융상품이 적합하다”며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춰 위험자산 투자한도만 정하면 되는 자산배분상품이나 은퇴시기만 정하면 자동으로 자산배분비중을 조정해나가는 TDF(Target Date fund) 같은 상품을 눈여겨볼만하다”고 조언했다.

◆65년 운용되는 연금…기본특성 알고 투자해야

연금운용을 잘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연금이 가진 특징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연금은 적립할 때 35년, 인출할 때 30년 총 65년간 운용되는 ‘초장기’ 운용상품이다. 25세에 취직해 60세에 퇴직을 한다고 하면 35년간 연금을 부어야 한다. 노후엔 연금에서 생활비를 인출하기 때문에 연금이 모두 소진되려면 퇴직 후에도 3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땅에 투자하려면 20년 정도 묻어둔다는 각오로 사놓은 뒤 까먹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투자기간에 따라 투자하는 상품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땅은 장기로 투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식은 장기로 투자하는 걸 잊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으로 연금은 ‘적립과 인출’이라는 두 단계가 모두 포함돼 있다. 연금은 65년간 목돈을 가만히 쌓아두는 상품이 아니라 퇴직하기 전까지는 적립을 통해 자산을 쌓으며 운용하고 퇴직 후에는 적립된 자산에서 돈을 빼 쓰면서 운용한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과 축적된 돈에서 생활비를 찾아 쓰는 두 방식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자산운용방식은 이 두 단계에서 각각 달라져야 한다. 적립시기에는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고, 인출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자산을 택해야 한다. 이때 적립과 인출시기에 따라 자동으로 위험자산의 비중을 다르게 배분해주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자기가 직접 운용해야 한다’ 것도 연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연금자산 운용에 관한 권리와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귀속된다. 연금에 어떤 상품을 포함시킬지, 연금을 중도에 찾아 쓸지, 인출할 때는 종신연금을 구입할지 투자자산에서 자동 인출을 할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람은 목돈이 있으면 중간에 찾고 싶고 한번 잘못 가입돼 있어도 계속 그대로 두는 경향이 있다.실제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을 처음 가입하는 사람들은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원리금 보장상품에 많이 가입하고 주식시장이 좋을 때는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문제는 이렇게 선택을 하고 난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쭉 그대로 둔다는 점이다. 퇴직연금 최초 가입 시점의 주식시장 분위기가 평생 자산 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자산 리스크 크게 낮춰

연금은 ‘분산’된 상품을 운용한다. 연금은 정부가 세제 혜택까지 주면서 사람들의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운용하다 노후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

초장기로 운용하는 연금은 어떤 위험이 생길지 모르므로 분산의 개념을 폭넓은 시야로 볼 필요가 있다. 한 국가, 한 종류의 위험자산에만 집중 투자할 경우 지나치게 높은 변동성을 가지게 되며 변동성이 높은 연금 포트폴리오는 장기적인 성과가 떨어진다.

국내 주식에만 투자했을 경우와 해외 선진국 주식에 분산 투자할 경우 변동성 변화를 살펴보면 10년을 투자할 경우 글로벌 분산 투자로 인해 변동성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초 투자금액이 1000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복합적인 시뮬레이션 결과 30년이 지난 후 투자 성과는 변동성이 없는 A투자안은 4322원, 변동성이 15%인 B투자안은 3172원, 변동성 25%인 C투자안은 1801원, 변동성이 35%인 D투자안은 739원으로 나타났다. 30년이라는 초장기 투자 상황에서 변동성이 큰 투자안은 최악의 성과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중 투자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 변동성을 낮추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분산’이다. 자산군 분산, 자산군 내에서의 분산, 지역별 분산 등을 통해 철저하게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자산군 분산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서로 다른 수익과 위험구조를 가진 자산들에 나눠 투자하는 방식이다. 자산군 내에서의 분산은 동일한 자산군 내에 속해 있는 여러 자산들에 나눠 투자하는 형태로 주식투자의 경우 해외 주식, 가치주, 배당주 등으로 분산한다. 지역별 분산은 한국, 아시아, 미국, 유럽 등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의 자산에 나눠 투자하는 형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김경록 소장은 “분산은 성격이 다른 위험 자산의 결합에서 효과가 발휘되기때문에 충분히 분산된 연금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투자자산을 가져야 한다”며 “투자자산은 야생마처럼 힘은 좋지만 다루기 어렵다. 야생마인 투자자산을 길들이는 두 가지 장치는 장기투자와 분산이며 이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의사결정을 한 뒤 자동항법장치에 맡겨두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자료제공: 미래에셋은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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