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반퇴(半退)’는 이제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한국 가구원 중 한 명이라도 반퇴 상태에 있는 경우는 전체 가구의 19.0%를 차지하고 있다.

‘반퇴’란 장기간 종사하던 직장이나 직업에서 퇴직 한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중이거나 새로운 일자리로 옮긴 상태를 말한다.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는 “기존 은퇴세대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 바로 은퇴하는 전통적 은퇴나 완전은퇴 성향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서비스 산업 고도화와 정규직의 조기퇴직 등으로 퇴직 후에도 노동시장을 떠나지 않고 가교 일자리에서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반퇴’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퇴 후 유사직업으로 전환 기간 ‘평균 2년’

한국의 반퇴 현상은 점진적 은퇴로 변해가는 은퇴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점진적 은퇴(phased retirement)’란 생애의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가교적인 일자리를 거치다 생애 근로가 끝나는 형태의 은퇴를 말한다.

한국인들이 반퇴를 경험하는 평균 나이는 47세이며 55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반퇴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평균 2년 정도의 기간을 거쳐 유사업종군으로 직업을 전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50~54세’와 ‘55~59세’에 반퇴를 경험한 비율이 각각 15.2%, 18.3%로 50대가 전체 반퇴경험의 33.5%를 차지했다.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데 소요된 반퇴기간은 평균 2년 정도로 ‘1년~2년 미만’(33.0%), ‘6개월 미만’(22.2%)으로 나타났으며 반퇴를 경험한 후 대부분 동일 직업군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임금근로자(63.9%), 프리랜서(56.5%), 자영업(54.5%) 순).

반퇴 시기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은 ‘금융자산을 처분(74.5%)’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연금자산 처분(38.2%)’, ‘부채 활용(14.1%)’, ‘부동산 처분(2.5%)’순으로 나타났다.

개별자산으로는 ‘예적금’(46.0%)과 ‘퇴직금’(30.2%)을 사용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퇴직연금’(10.0%), ‘신용대출’(9.7%)을 통해서도 반퇴 시기에 부족한 자금을 충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퇴 기간에 사용한 자산은 반퇴를 경험한 기간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반퇴 기간에 사용한 자산이 반퇴를 경험한 기간별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표참조>

단기인 경우는 ‘실업급여’와 ‘금융자산’을 처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장기화될수록 ‘연금자산’을 처분하거나 ‘대출’을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1년 미만의 단기 반퇴는 ‘예적금’(43.2%)과 ‘퇴직금’(34.4%), ‘실업급여’(29.6%) 순으로 금융자산을 활용했으며, 1년이상 3년 미만의 중기에는 ‘예적금’(50.0%), ‘퇴직금’(26.2%), ‘실업급여’(26.2%)외에도 ‘신용대출’(10.7%), ‘개인연금’(8.3%), ‘주식/채권’(7.7%) 등 금융자산과 연금자산, 부채까지 활용하는 비율이 상승했다.

특히 3년 이상의 장기 반퇴는 ‘예적금’(41.2%)과 ‘퇴직금’(32.4%)의 금융자산 외에 장기상품인 ‘보험’(8.8%)과 ‘신용대출’(16.2%), ‘부동산 담보대출’(11.8%), ‘금융상품담보대출’(4.4%) 등의 부채를 통해 비용을 충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갑작스런 소득감소…효과적 자산관리 어려워

반퇴 전후 가구는 소득과 지출에 변화를 경험했는데 지출 감소(51.2%)보다는 소득이 감소(74.8%)한 경우가 많아 경제적 여건 악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을 줄인 경우 ‘외식비’와 ‘실생활비’에서 줄인 경우가 많았으며 ‘자녀교육비’나 ‘부모님 부양비’, ‘의료비’. ‘부채상환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지출을 늘린 항목은 ‘자녀교육비’(47.6%)가 가장 많았고 ‘실생활비’(23.8%), ‘의료비’(7.1%) 순으로 늘어났다.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외식비’와 ‘품위유지비’, ‘여가 및 취미생활 비용’이 가장 컸으며 자녀교육비를 제외한 ‘실생활비’에도 탄력적인 운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반퇴 가구가 새로운 일을 찾으면서 경험한 주요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 ‘정보부재’, ‘허탈감’이 가장 컸다.

자영업을 준비했던 경우 반 이상은 ‘업종선택’(53.8%)과 ‘창업자금 확보’(53.8%)에 어려움을 느꼈고 ‘상권 및 입지분석’, ‘사업타당성 분석’ 등에도 어려움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근로직을 준비했던 경우는 ‘재취업시장 부족’(61.6%)을 가장 어렵게 여겼으며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부족’(40.7%)이 뒤를 이었다.

반퇴를 경험한 가구는 반퇴 시기에 소득과 지출을 효과적으로 조정한 경우가 27.7%에 불과했으며 자산관리 실행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퇴 시기에 소득과 지출을 효과적으로 조정했는지 질문한 결과 ‘매우 효율적이었다와 약간 효율적이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27.7%였으며 ‘반반이었다’(45.4%), ‘거의 효율적이지 않았다와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26.9%)라고 응답한 비중도 적지 않았다.

반퇴 시기에 소득과 지출 관리가 ‘효율적이지 못하다(26.9%)’고 생각했음에도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행동을 실행한 경우는 21.6%였으며, ‘반반이었다’(45.4%)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산관리 행동을 실행한 경우도 29.3%로 낮은 수준이었다.

◆EU 조기퇴직…실업률 증가, 연금고갈 야기시켜

우리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들은 경제불황 시기 조기퇴직을 장려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연금개혁 등 퇴직시스템 개선을 통해 사회적인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1970년대 경제불황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정퇴직연령을 낮추고 연금 수급자격을 완화시켜 장년층 근로자의 근로소득을 연금이나 실업급여로 대체하는 적극적인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하지만 조기퇴직자 증가로 청년 실업률이 낮아지기 보다는 조기퇴직자에 지급할 연금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청년들의 연금보험료가 높아지자 오히려 신규채용이 감소하고 연금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그 후 유럽 각국은 1990년대 말 연금개혁을 단행해 기존 조기퇴직 정책을 완화하고 고령근로자의 근로를 장려하며 점진적 은퇴를 지원하는 ‘점진적 퇴직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점진적 퇴직제도란 고령근로자들이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감소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충해 주는 제도다.

연금지급 시점까지 과도기 동안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고 고용보험 등에서 일정 수준의 보충소득을 지원받아 소득과 연금재원을 함께 확보하는 연금개혁은 정년 이후 연금지급 시점까지 시간제근로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선진국, 탄력퇴직∙가교연금 등 단계적 은퇴준비

점진적 퇴직제도는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탄력적 퇴직제도’와 스위스의 기업연금 기반 ‘가교연금’을 들 수 있다.

스웨덴은 1차 오일쇼크에 따른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1976년 고용주 부담으로 조기퇴직자에게 소득을 지원해주는 시간제연금을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시간제연금제도는 정년 65세에 이르기 전인 60~64세의 근로자가 시간제 근로자로 전환할 경우 기업이 상실소득의 일부(65%)를 보존해주고 정년 때 수령하는 노령연금은 변함없이 제공해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고용주에 의해 비용이 충당되면서 고령근로자의 조기퇴직이 청년층 취업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동시에 조기연금수령으로 연금재원에 충격을 주자 지난 2000년 폐지됐다.

스웨덴은 이후 직업연금과 결합된 부분연금제도를 중앙정부(2003년)와 지방정부 피고용자(2007년)를 대상으로 도입했다. ‘탄력적 퇴직제도’를 도입해 퇴직시기를 61~70세 사이에서 유연하게 선택 할 수 있고 조기퇴직 할 경우 65세 기준에서 개월당 0.5%씩 차감해 지연퇴직할 경우 개월당 0.7%씩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특히 지연퇴직의 경우 부분근로로 감소한 소득을 보충할 수 있도록 65세 수령연금의 25%, 50%, 75%를 부분적으로 미리 받을 수 있어 고령근로자의 정년 이후 근로연장과 연금재정 확충에 기여했다.

스위스의 경우 노령연금의 조기수급 또는 연장을 적용한 탄력적 퇴직제도와 함께 기업연금 기반의 점진적 퇴직제도인 ‘가교연금(Bridge Pension)’을 운영하고 있다.

다층소득보장제도가 효과적으로 구축돼 있는 스위스는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의 전체 노후소득보장체계를 통해 퇴직 전 소득 대비 70% 소득대체율 제공을 목표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조기퇴직에 따른 노후소득의 공백 방지를 위해 기업연금에 기초한 가교연금을 지급하고 그 비용은 기업과 근로자가 공동 부담하고 있다.

크레딧 스위스 그룹의 경우 사내 근로자가 정규노령연금 수급연령에 도달할 때 받을 수 있는 연금급여를 미리 산정해 55~60세 사이 조기퇴직자의 경우 전적으로 본인이 부담하고 60~64세 사이 퇴직자의 경우 기업부담으로 지원한다. 후자의 경우는 근로자가 별도로 보충적 가교연금을 신청할 수 있으며 노령연금 수급시점부터 사망 시까지 신청 총액의 5%를 매년 차감하는 방법으로 지원한다.

선진국에서 점진적 은퇴는 사회보장이 제공되는 가운데 근로를 지속하며 은퇴를 준비하는 개념이지만 국내의 경우 노후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않은 근로자들에게 조기퇴직은 고단한 은퇴를 의미한다.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는“지금 반퇴 세대는 노후보장이 부족한 상태에서 늘어난 기대수명과 앞당겨진 퇴직시점으로 노후기간의 소득 확보를 위해 1차 퇴직 후 최종 은퇴까지 경제활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반퇴자들의 다양한 퇴직경로와 고용여건·소득변동·소비지출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은퇴 시점 소득확충을 위한 연금·세제 지원 정책 방안과 민간의 은퇴설계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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