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양조 10톤 폐기했을 만큼 맥주 맛에 심혈 기울이는 브루어리

굴뚝 없는 산업으로 지역경제 보태려 속초에 양조장 낸 김정현 대표

▲ 김정현 대표는 지난해 본격적인 수제맥주 사업을 위해 자신의 고향 속초에 맥주를 양조하는 브루어리를 차렸다. 사진은 펍에서 바라본 양조시설. <제공 : 크래프트 루>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한옥과 수제 맥주.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현실세계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한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공간에서 판매하는 술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기준은 잘 양조된 술이냐다.

100여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의 숨겨진 골목, 그래서 북촌과 서촌에 이어 청춘들의 발길이 모아지고 있는 익선동. 이곳에 한옥과 수제맥주를 연결시켜 새로운 젊음의 코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 맥주 마니아가 있다. 한옥을 좋아하는 건축 디자이너 김정현 크래프트 루 대표가 바로 그다.

크래프트 루. 낱말은 낯설지만 뜻은 익숙하다. 루는 누각을 의미하는 루(樓)와 영어 Roof(지붕)를 함께 뜻한다. 한옥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 트랜디한 이름이다. 실내공간은 현대적으로 인테리어를 가미했지만 틀거리는 한옥 그대로다. 익선동이 아직 뜨지 않은 시기에 한옥을 매입해 자신이 디자인을 해서 오픈한 공간이다. 

지난해 한 음식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치렀던 김 대표는 사실 음식보다 좋은 맥주를 위해 양조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피자 맛집으로 소개돼 더 좋은 피자를 내기 위해 이탈리안 셰프의 도우로 피자 레시피를 바꿀 만큼 음식의 완성도도 챙기지만, 그는 자신의 양조장에서 시범 양조한 맥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버렸을 만큼 맥주에 자존감을 담고자 한다. 당시 폐기된 맥주의 양이 대략 10톤가량이란다. 속초에 만든 양조장 ‘크래프트 루트’의 생산 규모가 배치(1회 생산량)당 1톤이니 10번의 시범양조에서 얻은 맥주를 버렸다는 뜻이 된다. 

이유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맥주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크래프트 루는 독일의 비어 소물리에 과정인 되멘스 코스를 마친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김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맥주 맛을 까다롭게 찾아가는 중이다. 수제맥주 초기 형성기에 다양한 브루어리에서 들쭉날쭉한 맥주 맛을 선보이고 있어 각 카테고리에 맞는 맥주를 선보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의 맥주는 음용성이 뛰어나다. 시트러스하면서도 몰트맛을 살린 페일에일, IPA의 쓴 홉맛을 줄여 부드러운 술맛을 내면서도 아로마는 그대로 내도록 만든 세션IPA, 겨울철 묵직한 술맛으로 주당들을 즐겁게 해주는 스타우트도 라이트한 질감으로 설계돼 있다. 연중 생산하는 6종의 맥주는 특히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음용성을 강조하고, 시즌별로 생산할 8~9종의 맥주는 때론 특별한 맛을 강조시켜 맥주 마니아들이 즐길 수 있도록 레시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 좁은 골목에 한옥 100여채가 밀집돼 고풍스러움을 자아내는 익선동. 그곳에 한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크래프트 루’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맥주를 따르는 탭 시설. <제공 : 크래프트 루>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만든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이 맥주의 이름들이다. 그의 고향, 속초를 맥주에 담은 것이다. 동명항, 대포항, 설(雪), 갯배, 속초 등 하나같이 자신의 고향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만든 이름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청초호 인근의 명소를 직접 사진을 찍어 그래픽으로 옮겨 라벨로 제작해 속초의 숨은 명소를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그리했단다. 

특히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속초에 브루어리를 만든 것 또한 고향에 굴뚝 없는 공장을 만들어 지역경제에 보탬을 주려했단다. 바다를 삶의 근거로 살고 있는 도시지만, 성장의 한계가 있다 보니 또 다른 찾을 거리를 만들어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조그마한 힘을 보태고 싶었다는 것이다. 맥주를 향한 그의 열정과 애향심이 만들어내는 그의 맥주의 부드러운 맛과 한옥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는 재미는 그래서 남다르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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