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손정배 팀장

지난 가을 인기배우 故 김주혁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사망 소식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수많은 목격자와 블랙박스 영상, 국과수의 부검결과까지 나왔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약 그의 차량에 사고기록장치인 EDR(Event Data Recorder)이 장착돼 있었다면 사고원인 규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EDR은 자동차의 운행기록을 저장하는 데이터 기록 장치로 항공기의 블랙박스와 같다.

EDR은 차량이 충돌하기 직전 일정시간 동안의 주행속도, 제동장치 및 에어백의 작동여부 등 자동차 운행상태와 운전자의 차량제어를 기록함으로써 과학적으로 교통사고를 재구성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북미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EDR 정보와 관련된 표준을 제정해 교통사고 원인규명, 보험사기 적발, 급발진 원인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에 자동차관리법에 EDR 장착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 2015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EDR 정보 활용은 매우 제한적인 실정이다.

EDR 정보를 개인 사생활 정보로 보고 운전자 등이 동의한 경우에만 자동차 제작사가 읽어줄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국내 자동차 제작사는 EDR 정보를 읽을 장비를 국내에 공급하지 않고 있으며, 경찰청이나 보험사 같은 교통사고조사 기관의 요청에도 협조가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경찰청은 자체적으로 해외에서 장비를 들여와 EDR 정보를 분석하고 있으나 장비업데이트 곤란 등 적지 않은 애로를 겪고 있다.

보험사는 EDR 정보 추출 장비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차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보험사고차량에서 직접적으로 데이터를 취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고원인분석이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다.

2016년 보험사고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보험처리 건수는 446만2538건이며 사망자수는 4381명, 부상자수는 181만3493명으로 나타났다.

또 도로교통공단의 발표에 의하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비용은 약 26조원(2014년 기준)이 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교통사고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으며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교통사고 발생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잘못된 조사결과로 인한 억울함은 없어야 할 것이며 이로 인한 시간적 경제적 손실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는 온통 4차산업혁명과 빅데이터에 관한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보다 큰 가치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교통사고 발생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정보가 EDR에 저장돼 있음에도 영업비밀이나 개인 사생활보호라는 이유로 사장된다면 이들 정보가 갖는 공적인 유익성에 비추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기업의 가치 역시 올라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1959년 3점식 안전벨트의 특허권을 획득했으나 이를 다른 제작사와 공유한 볼보는 지금까지도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동일한 원인의 사고 재발을 막고 잘못된 사고조사로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는데 자동차 제작사의 EDR 정보가 교통사고조사 관련기관에 원활히 제공된다면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감소와 사회적 비용을 감소하는 공익적 효과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갖는 기업가치 역시 향상 되지 않을까.

자동차 제작사의 용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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