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는 술 외관 따른 분류, 약주는 약용성 강조한 이름일뿐

100년전 일제가 만든 술분류 개정논의 없이 지금까지 사용

▲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소곡주의 고장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소곡주 축제를 여는데, 축제장 한편에 소곡주 원주가 담긴 항아리에서 직접 용수를 박아 술의 맑은 부분을 채주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쌀과 누룩, 그리고 물이 만나 빚어지는 우리 술은 다 익으면 탁한 부분과 맑은 부분으로 나눠진다. 서양에서 시작된 맥주는 발아한 보리를 끓여 당화액을 추출한 뒤 여기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발효가 끝난 술에 섬유질이 남지 않지만, 우리 술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하는 병행복발효로 만들기 때문에 당화되지 않은 섬유질이 남아 술의 탁도를 높이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술은 발효 기간과 술밥을 추가하는 횟수에 따라 알코올 도수 13도에서 19도에 이르게 된다.

술이 다 익은 뒤 용수(술을 거르는 전통 도구)를 박아 맑은 부분을 취하면 청주가 되고 흔히 지게미라 부르는 섬유질 부분에 물을 타서 거르면 막걸리라 부르는 탁주가 된다. 즉 한 술에서 청주와 탁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술의 이런 제조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집에서 술 빚는 가양주 문화가 사라진 탓이다.

게다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한반도 통치 자금 확보를 위해 기획된 일제의 주세령 반포과정에서 우리 술은 그 이름을 일본에 빼앗기게 되는데, 그 것이 바로 우리 술 ‘청주(淸酒)’다. 우리 술 문화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에 걸쳐 다양한 주방문(술제조법)이 존재했던 청주는 일본의 사케에게 그 이름을 탈취 당하고 ‘약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해방 이후  여러 차례 주세법이 개정됐지만 술 이름을 되찾으려는 논의는 없이 100년이 넘는 시간만 흐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술 청주는 ‘홍길동’이 되어 약주라는 이름으로 미약한 정체성을 유지해야 했다.

▲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참판댁에서 빚는 연엽주는 충남의 무형문화재 술이다. 연잎을 활용한 이 술은 산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조선시대 청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세법이 규정하고 있는 청주와 약주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이 내용을 살펴보면 타자가 재단한 법률에 의해 우리 술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청주와 약주를 가르는 법률에서의 기준은 누룩 사용량에 있다. 누룩 1% 이상 들어간 술은 약주로 분류하고 1% 이하를 넣은 술은 청주로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룩 1%의 기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쌀과 보리 등을 발효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통 발효제인 누룩의 양은 최소 9%이다. 보통은 20% 정도의 누룩을 넣지만 장기 저온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술을 빚으면 9%로도 충분히 술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술은 누룩이 아닌 백국과 황국 등의 곰팡이를 쌀에 입힌 입국(粒麴)을 사용해 흔히 정종이라 불리는 사케를 만든다. 따라서 누룩 1%의 기준으로 술을 나눌 경우 일본식 입국을 사용한 술은 누룩량 1% 이하의 기준에 따라 청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전통주 제조법에 따라 술을 빚으면 최소 9% 이상의 누룩이 들어가 약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술 청주가 약주가 된 사연이다. 

그렇다면 약주라는 이름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청주와 탁주는 술의 외형상의 특징에 따라 분류하는 기준이라면 약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약용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흉년이 들 때마다 금주령을 내려야했던 조선시대. 양반가들은 술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약주라는 이름으로 금주령을 피해갔다. 충효를 근간으로 삼은 유교문화에서 약은 전천후의 처방전이 되어준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주 한잔’이라는 관용어가 사용될 만큼 약주는 우리 술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약용을 강조하는 술에는 소주 침출주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약주는 청주를 대신할 수 없다고 전통주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술은 문화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술을 주로 소비하는 사회이지만, 그리고 주세령과 양곡관리법 등으로 전통주 문화가 단절되기도 했지만 고문헌에 담겨 있는 주방문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그 문화의 원형을 있는 그대로 살려는 길은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다. 우리 술 청주를 약주가 아닌 청주로 불리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와야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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