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간 칸막이, 액체처럼 녹아 없어지는 시대서 살아남자면

허인 KB국민은행장, ‘꼰대 상사’와 ‘밉상 고참’은 되지 말자 주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각 은행 간에는 서로 어깨가 부딪치고 숨소리가 들릴 만큼 대등한 ‘초박빙’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현재의 위치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는 현실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이 최근 조회사를 통해 밝힌 소회다. 

이어 “업종 간의 견고했던 칸막이가 액체처럼 융해돼 버리는 ‘슈퍼 플루이드’시대를 살고 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디지털 기업과의 국경 없는 금융 서비스 경쟁은 머지않아 눈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거친 숨소리를 들어가며 초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현장의 분위기를 허 행장이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요구한다. 무조건 고객에게 자신들이 만든 앱을 권하지 말고, 직원들이 먼저 써보고 개선하는 일을 생활화하잔다. 그렇게 하면서 ‘꼰대 상사’내지는 ‘밉상 고참’은 되지 말아달란다. 어쩌면 어제까지의 은행에선 ‘꼰대 상사’와 ‘밉상 고참’이 설 땅이 있었지만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환경에선 조직력을 와해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진단까지 같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선후배들이 함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조직만이 강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KB국민은행에서 일궈내자는 주문이기도 하다. 

모든 은행이 모바일 앱을 포함한 비대면 거래에 집중하고 있는 시기이니 당연하다. 그래서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정확하게 현재의 병목지점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허 행장이 지적한 초박빙의 환경에서 이기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이 조회사의 의미를 풀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20세기 금융질서는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글의 법칙이 관통하는 시대지만 정글을 이루는 문법이 다르다. 지금은 변화의 방향 자체를 읽어내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모든 산업 영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법과 체계가 거칠다. 세련되게 내용을 정리할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모양새를 갖추다 보면 구닥다리가 되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낡은 모델을 폐기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현재의 금융인들은 새로운 금융시대의 ‘선조’가 될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미래의 삶과 관련한 영감을 내놓고 즉시 적용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론이 변화할 때나 붕괴할 때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간단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반 발짝 물러설 뿐이란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 금융인들은 시대의 변곡점을 넘어 대전환기의 한 가운데 있다. 인간이기에 비틀거리고 미끄러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몸부림 치고 있는 금융인들이기도 하다. 스타인벡의 말처럼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허인 행장의 말처럼 그 실수가 ‘꼰대’와 ‘밉상’의 그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박빙의 상황에서 어깨 하나 정도의 선두라도 유지하기 위해선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