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주·두견주에 담긴 2018 남북정상회의 핵심 메시지는

남과 북이 ‘함께’ 북핵 등 외교 쟁점 직접 풀어가자는 의미

▲ 문배주는 평양의 대표술이다. 수수와 조 등의 잡곡으로 빚은 술을 증류한 문배주에선 돌배향이 나는데 이 때문에 술 이름도 문배주가 됐다. 사진은 1993년 작고한 이경찬 문배주 명인의 사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정상회담은 외교 당사국의 현안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그 성과를 양국 정상이 확인하는 절차다. 그래서 실무자들이 가시적 성과를 낸 경우에만 의미 있는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회담에는 만찬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만찬에 등장하는 음식과 건배주, 즉 만찬주는 정상회담이 갖는 외교적 메시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은유적으로 상징하거나 초청국의 자존감을 드러내는 표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죽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뚱 주석은 자신들의 국주 ‘마오타이주’를 내놓았다.

1900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에서 관람객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병을 깨뜨려 향기로 주위를 사로잡아 결국 대상을 수상한 술이다. 이 술이 첫 미중간의 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등장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중국이 만찬주로 내놓은 마오타이주는 중국의 자존감이 투여된 술이었다.

이러한 자존감은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도 똑같이 적용된 바 있다. 1999년 이란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만찬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슬람 율법에 따라 와인을 마실 수 없었던 이란 측은 와인을 만찬에서 빼줄 것을 요청했으나, 와인이 빠진 만찬을 상상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이란 대통령의 방문을 ‘국빈방문’에서 ‘공식방문’으로 격을 낮춰 진행했다. 와인이 프랑스의 국격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처럼 만찬주는 정상회담에 참여하는 국가의 자존심을 외교적 메시지에 연결시키는 중요한 문화적 도구 역할을 해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만찬주

지난주 11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이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가운데 만찬주로 오른 문배주와 두견주에 대해 일반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보도와 함께 만찬과정에서 양 정상과 배석자들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가십거리로 문배주와 두견주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문배주 원샷 보도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선 호리병 모양의 두견주로 술잔을 따르는 장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어느 만찬 보도보다 건배주 관련 기사가 급증한 것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자주 소개된 문배주는 원래 평양 지역에서 만들어지던 전통주다. 밀누룩과 수수와 조를 이용해 술덧을 빚고 이를 증류한 술인데, 술에서 돌배향이 난다고 해서 문배주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문배는 토종 돌배의 일종이다.

▲ 두견주는 당진 면천에서 빚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술이다. 진달래꽃잎을 고두밥, 누룩과 같이 넣어 술을 빚는데 100일 정도 발효 숙성시킨다. 사진은 진달래 화전과 두견주 사진.

이 술이 남측의 국가지정 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1993년에 작고한 이경찬 명인이 평양에서 빚었던 문배주를 남쪽에 내려와 복원했기 때문이다.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 이 술을 빚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 이기춘 명인. 

문배주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정상회담 만찬주로 상에 올랐는데, 지난 1991년 한국과 소련의 정상회담과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그리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때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배주는 건배주로 사용된 바 있다. 

이처럼 문배주가 남북정상회담 등에 자주 오른 까닭은 태생 자체가 평양이라는 점과 북측 사람들이 소주를 즐기기 때문이다.

반면, 문배주와 함께 만찬장에 오른 면천두견주는 남측을 대표하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2018년 3월26일자 본보 참조) 벼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에선 잡곡보다는 쌀을 이용한 술을 즐겼으며, 진달래는 봄이면 온 산하를 덮었던 꽃인 만큼 이를 부재료로 한 두견주는 일상적으로 빚던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문배주는 여러 차례 만찬주로 등장했지만 면천두견주는 이번에 처음 상에 올랐다. 판문점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진 2018년 정상회담의 만찬주는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훌륭히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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