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오리온 초코파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정(情)’이라는 단어다. 피로회복음료인 박카스하면 따뜻한 일상을 소재로 한 광고물들이 머리에 잡힌다. 이미지 광고는 지속될수록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퍼져나간다.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이미지가 어느 순간 그 상품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형성해온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하면서 최신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선택들이다. 이러한 기업의 결정에는 감정, 공감, 감각, 정서 등 감성의 문을 두드리는 마케팅이라는 공통점이 숨어 있다. 초코파이와 박카스의 접근이 그렇고, 10여 년 전 오비맥주 등 국내 맥주회사들의 광고가 그랬다. 

이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이유는 논리와 논거로 이뤄지는 이성적 호소가 오히려 감성에 다가서는 설득보다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성은 반대되는 새로운 자료만 등장하면 바로 그 순간 기존의 생각은 폐기하지만 감성은 한번 선택한 이미지를 길게 유지하고 좀처럼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소니는 전자제품을 판매하기보다는 시장과 고객의 관점에서 즐거움을 팔려고 노력했고, 자포스라는 온라인 신발업체는 신발이 아니라 직원들을 잘 대우해 고객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운동에 집중했다. 또한 미국의 ‘애주어 시즈’라는 크루즈 여행회사는 크루즈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추억’을 팔았고, 애플은 컴퓨터 사업을 했다기보다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몰두했다는 감성적 이미지 확보에 주력했던 것이다. 

최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목소리가 ‘따뜻한 금융’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여름, 채용비리 재판전후로 내놓고 있는 어록이 모두 포용적 금융에 대한 메시지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의 연유가 무엇이든, 메시지는 쌓이는 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 함 행장이 내놓은 메시지들은 다음과 같다.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는 물론,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은행의 모습을 강조하고, 장애인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게는 5억원의 후원금을 쾌척했다. 수년 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에는 해운기업 금융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모두 ‘따뜻함’이 소재다. 

그런데 이 같은 메시지 전략은 부정적인 사건이 하나만 발생해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채용비리 재판과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듯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어쩌면 ‘따뜻한 금융’과 관련한 최근의 행보가 재판과 관련한 정무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정기국회가 열리면 이내 국정감사다. 정무위원회에선 채용비리와 대출금리 부당신청 문제가 발생한 금융지주와 은행의 수장들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이다. 그래서

KEB하나은행의 이 같은 추세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야 부정적인 보도를 일부라도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은행의 핵심 관계자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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