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복지겸 장군 전설 얽힌 은행나무 주변 조경 개선 사업 한창

아는 만큼 보이는 유적처럼 아는 만큼 맛 알 수 있는 우리 전통주

▲ 두견주는 봄철 우리 땅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는 진달래를 이용해 빚은 술이다. 그리고 진달래가 피는 계절이 되면 진달래의 꽃술을 제거해 화전을 빚어 같이 마시곤 했던 술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달 말 당진의 면천두견주를 다시 찾았다. 올 봄, 진달래가 필 무렵 찾았으니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본지 2018년 3월 26일자 참조). 달큰하면서 입안에 가득 묻어나는 독특한 진달래의 맛. 점성이 있어 한산 소곡주가 떠오르지만 결은 달라 오래 마시기 부담 없는 술맛에 이끌린 것만은 아니었다.

두견주는 많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술이다. 술이 마을에 유래돼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전승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두견주만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외국의 명주들, 특히 와인은 생산자들이 겪은 간난신고 그 자체가 스토리가 돼 술과 함께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술에도 그런 술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두견주는 국내 무형문화재 중 사람이 아닌 조직에 문화재 지위가 부여된 유일한 곳이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면천두견주의 기능보유자였던 박승규 씨가 2001년 별세하면서 계승자를 구하지 못해 한 때 위기를 맞이했던 곳. 하지만 공동체는 술을 되살리기 위해 고민한다. 통상의 무형문화재는 기능보유자가 유고되면 대부분 가족에 의해 전수체계가 진행되지만 두견주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공동체가 나서 두견주 제조 경험을 가진 8가구 16명을 선정해 보존회를 결성하고 전통주 업계의 대부인 박록담 선생으로부터 3년간 교육을 받아 2008년이 돼서야 술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된다. 

술이 만들어졌다고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7년 동안 술이 사라졌던 이유도 있지만 지역과의 끈끈한 연고를 갖지 못하면, 그래서 지역민들이 술을 찾지 않으면 한산 소곡주나 진도 홍주처럼 대처에 소비처를 둘 수 없는 것이 전통주의 현실이다. 보존회을 맡고 있는 김승길 회장은 몇 년 동안 지역 행사에 술을 많이 풀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역의 인심을 획득하면서 다시 뿌리를 내렸고 조금씩 판로를 만들어나갔다고 한다.  

판로를 확보했지만 아직 변변한 양조장도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래의 두견주 양조장은 여러 번 주인을 바꿔가며 면천두견주와 관계없는 막걸리 양조장이 돼 있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에 걸맞은 양조장을 지난 2017년에 만들어줬다. 이렇게 만들어진 내용과 형식에 포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진 솔뫼성지를 방문할 당시 천주교 아시아청년대회 사제단 만찬주로 두견주가 올랐고, 올 봄 남북 정상이 만난 자리에 만찬주로 오른 것이다. 

▲ 2016년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면천군의 은행나무 두그루.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이 그의 집 뜰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이며, 수령이 1100여 년을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군에서 나서서 두견주와 관련한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폐교 공간을 정리해주고 있고, 술을 빚기 위해 사용한 우물인 안샘은 이미 오래전에 보존조치가 이뤄지는 등 스토리텔링을 위한 공간과 콘텐츠를 채워져 가고 있지만, 전통주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두견주보존회 건물이 번듯하게 만들어져 기분은 좋지만 한 달 전기료만 백만원에 달한다. 근데 700ml 두견주 한 병을 팔면 마진이 2000원 남는다. 이렇게 해서 겨우 1년에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는 욕심을 더 내서 3억5000만원을 기대하지만....”

이렇게 김 회장은 자신의 말을 줄인다. 8가구 16명이 부지런히 일해 한 해 버는 돈치고는 적어도 많이 적다. 봄철에 진달래 수매에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어느 미술사가의 말처럼 우리 술도 아는 만큼 눈에 들어오고 맛도 느껴진다.

1000년이 된 술, 두견주도 그렇다. 추석, 한가위다. 차례주로 올려도 좋은 술. 더 이상 일본식 청주가 조상에게 오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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