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여론의 중요성을 잘 요약한 글 중 하나가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단어다.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을 풀어쓰면 ‘임금은 배, 백성은 물, 강물은 배를 뜨게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이다. 수년전에 전국의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단어이기도 하다.

이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 한차례 등장한다. 정조 연간, 온천을 가는 길에 궁관 이수봉이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강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건너는 강물을 빗대 순자의 이야기를 정조에게 건넨 것이다. 

이 단어는 현실감각이 탁월했던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 연간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다만 숙종은 ‘임금은 배, 신하는 물’이라고 좁은 의미에서 사용했다. 숙종이 주수도(舟水圖)를 제작하게 하고 이를 스스로 경계하는 문구로 사용했다는 기록에 등장한다. 물이 고요해야 배가 편안하고, 신하가 현명해야 임금이 편안하다는 양가적 해석을 담은 것이다. 

정조의 에피소드 중에 ‘민심은 무형의 성’이라는 내용이 있다. 정조가 신하들과 함께 경전과 역사를 자주 토론했다고 한다. 1791년 성균관의 젊은 선비들에게 700여 남짓한 역사에 관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 중 하나가 당나라의 덕종이 성곽을 개축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성곽이란 갑작스런 난리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쌓는 것이다. 그런데 성을 쌓아도 흥하는 왕이 있는 반면 망하는 왕도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의 덕종이 술사의 이야기를 듣고 봉천성을 쌓았다. 그런데 결과가 주변 오랑캐를 막아내고자 만리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진시황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듯싶다. 이 내용을 정조는 자신의 일기와도 같은 <홍재전서>에 담았다. 

‘민심을 껴안는 것은 무형의 성이고 성을 높이 쌓는 것은 유형의 성’이라고 적은 정조는 덕종이 군신이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치고 무기를 정비했더라면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백성과 군사만 동원해 단지 유형의 성만을 쌓은 탓에 반란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즉 앞서 ‘군주민수’의 사례와 같은 결을 이루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을 무시하고 큰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 여론에 따라 순항을 할 수도 있고 전복될 수도 있는 것은 오늘날이 더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이니 당연하다.

지난주 금융권 수장들과 관련한 최고의 이슈는 주요 시중은행장 및 금융지주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 불발이었을 것이다. 수년째 꼬리를 물고 밝혀지고 있는 채용비리와 대출금리 부당 산출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증인 및 참고인 채택이 대거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까지 채택된 증인은 윤호영 카카오뱅크 행장과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2명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4%에서 34%까지 완화하는 내용으로 지난 달 통과됐지만 은산분리 완화대상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특례법 시행 운영과 관련한 문제점을 점검하겠다는 것이 정무위원회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금융지주 및 시중은행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는 기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검찰이 소환조사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또한 신한은행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신한카드의 채용비리도 수사할 방침이란다. 이슈가 많은 탓에 국감 증인은 피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신한금융지주의 경우는 차기 리더십과 관련, 구도가 복잡하게 얽히는 양상이다. 다시 은행의 대관파트는 분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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