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주계령에 은잔 방짜로 늘려 양껏 마신 정철과 손순효

애지중지 사기잔 지킨 김득신, 영원히 술잔이고 싶었던 이덕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지나가는 길손을 잡아끌어 아내에게 집의 술을 청했을 만큼 술을 즐겼다는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 술 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 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라고 적고 있다. 몰락한 양반의 1000석에 달하는 환곡을 갚아주고 양반이 되고자한 정선의 부자 상민에게 양반의 법도를 가르치는 내용 중 일부다.

풍자의 글이지만 양반의 술 마시는 법도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디 술이라는 것이 법도에 따를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대상이었으랴. 오늘은 네 사람의 조선 시대 주당들의 술잔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술이라는 존재를 애지중지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사기>의 ‘백이전’을 11만3000번을 읽은 책중독자, 조선 중기의 백곡 김득신의 이야기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고 난 뒤 ‘노둔(미련하고 둔하다)’하다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 붙었던 백곡. 그는 분명 조선 최고의 다독가였고, 39세에 사마시, 그리고 59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노력하는 범재의 표본이었다. 그가 남긴 문집에 ‘사기술잔이야기(沙盃說)’이라는 글이 있다. 

술을 즐겼던 백곡에게 친구가 도자기 술잔을 하나 주었는데, 애지중지하며 술을 마실 때 사용했으나 아들의 관리 소홀로 깨뜨려지고, 서울에 올라와 친구 집에서 좋은 술잔을 보고 술김에 참지 못하고 옷소매에 넣어 가져왔는데 이것도 계집종의 실수로 깨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선물 받은 술잔을 아예 집안 식솔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고 관리하고 있다며 생일을 맞아 그 술잔에 술을 마시니 기쁘기 한량없다는 것이 글의 요지다. 그리고 굳이 놋그릇으로 된 술잔을 쓰지 않고 도자 술잔을 쓰는 이유를 백곡은 술맛이 한결같아서라고 말한다. 그의 독서에 대한 이력만큼 술잔에 대한 애착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백곡 김득신은 술맛에 집중하기 위해 잔을 소중하게 다뤘다면 다음에 소개할 손순효와 송강 정철은 철저하게 실리 중심으로 술잔을 이해한 경우다. 

손순효는 글을 잘 써 성종이 총애한 신료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약점은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는 것. 그래서 성종은 그에게 “석 잔 넘게 마시지 말라”는 계주령(戒酒令)을 내린다. 어느 날 중요한 외교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손순효를 입궐시켰는데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다. 성종은 크게 화가 났지만 급한 대로 우선 그에게 문서를 작성시킨다. 그런데 주저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쓴 글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성종은 괘씸했으나 술에 취해서도 훌륭한 글을 남김에 따라, 은술잔을 주며 ‘하루에 한잔’으로 계주령을 강화한다. 그러나 애주가 손순효가 어찌 한잔에 만족할까. 그는 왕명을 어기지 않고 최대한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은장(銀匠)이를 부른다. 그렇게 방짜로 늘린 술잔은 소주 네댓 잔은 족히 됐으리라.

송강 정철도 술 때문에 구설이 잦은 사람이었다. 결국 반대 세력에게 논핵을 당하게 되자 선조는 그에게 은술잔을 내린다. 그리고 그에게 허용된 술은 하루 석잔. 그러나 ‘장진주사(將進酒辭)’의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주호(酒豪) 정철이 어찌 석 잔에 만족하겠는가. 그도 방짜로 늘린 술잔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해 후손들은 임금의 하사품을 함부로 두드려 펼 수 있겠느냐며 동인들의 모함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 하지만, 정철이 쓰던 술잔이라며 전해져 오는 술잔은 현존하고 있다. 이처럼 손순효와 정철은 술의 양을 늘리기 위해 술잔의 형태를 변형시켜서까지 술을 즐긴 주당이다.

끝으로 소개할 조선의 호주가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다. 

‘불취무귀(不醉無歸)’로 유명한 정조 때는 할아버지 영조에 비해 금주법이 느슨해진다. 정조 스스로도 술을 즐겼기에 신료들도 편하게 술을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덕에 이덕무도 술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긴다. 평생토록 읽은 책이 2만여 권에 달한다는 조선의 대표 책바보 이덕무가 남긴 글 중에 선비들이 지켜야할 행실을 적은 ‘사소절’이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술을 마시고 주사를 하면 선비일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런 그가 이백의 시 ‘양양가’에서 ‘백년, 삼만육천일, 반드시, 매일 3백잔을 기울이다’라는 제목의 시를 남긴다. 이 시에서 그는 “백천만겁 동안 그릇 굽는 곳의 흙이 되어 영원히 술잔 술병 옹기가 되리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술과 하나가 되려하는 ‘물아일체’의 심정을 글에 담은 것이다. 이쯤 되면 주당을 넘어서 주선의 경지에 달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제위의 술잔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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