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직접 체험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가는 허인 KB국민은행장

리더의 목표 제시만큼 동선이 중요한 까닭…메시지 효과 증폭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리더의 동선은 메시지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자신의 행동에 담아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리더의 일정이자 언론에 발표되는 발언이다. 그래서 리더의 메시지는 신중하게 관리된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만큼 CEO의 리스크를 줄이면서 되도록이면 조직이 설정한 메시지를 펼치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펼쳐지는 은행장들의 행보는 심상치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빠르게 메시지 전략이 펼쳐지는 듯 싶은 것이다. 수년전 어느 은행장은 반보만 앞서가자고 말했지만(영선반보) 이젠 한 두보 정도 앞서는 것은 예삿일이다. 물론 사회의 변화 속도에 대한 일반 대중의 학습효과가 반영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디지털’이다. 아니 향후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핫한 아이템일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작가 홉스는 “인간의 삶은 경쟁의 연속이며 달리는 경주와 같다”라고 말했는데, 실제 생존을 두고 벌이는 극한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지속가능을 결정하는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프레임 자체가 변경되는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모든 은행들이 생사를 걸고 디지털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디지털 원년이라는 레토릭부터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IT회사로의 변신을 주창한 금융회사도 등장했다. 홉스의 정의에 따르면 금융권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연 그 자체’의 상황에 놓인 것 같다.

이 와중에 유독 눈의 띄게 행보하는 은행장이 있다. KB국민은행의 허인 은행장이다. 최근 디지털 전략을 발표하자마자 바로 실리콘밸리로 출장을 떠났다. 디지털 인재를 구하는 한편, ‘혁명의 최전선’을 경험하기 위해 디지털 관련 기업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직접 디지털 혁명이 펼쳐지는 곳을 방문해 현장감을 제대로 느껴보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시선’이다. 허 행장의 방문목적은 IT회사로의 변신을 위한 현장체험이다. 올 초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던 IBK기업은행의 김도진 행장과 시선이 달랐던 것이다. 김 행장은 실리콘밸리은행을 비롯한 효율적인 벤처지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허 행장은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내지 디지털 기업을 은행의 경쟁자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살펴보기 위해 출장을 떠난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실리콘밸리 원정대를 두 차례 선발한 신한은행이 있지만 체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다르다. 신한은행은 IT 및 현업부서에서 직원들을 선발해서 디지털 혁명의 현장을 경험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라면 국민은행은 리더가 직접 현장감을 체험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현장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다. 모든 리더들이 현장에 답이 있다고 동분서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부지런함에는 ‘극장효과’가 숨어 있다. 주요 정치인들이 선거 국면에 시장통을 찾아 물건 값을 물어보거나 어묵꼬치를 먹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 행동의 이면엔 시장을 찾는 유권자들과 그 정치인이 같은 눈높이에 있다는 의사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가 언론에 노출되는 만큼 극장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점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명성을 쌓은 리더들은 현장방문을 중요시 했다. 이유는 현장에 가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경쟁자보다 빨리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가 없던 시절, 최전방을 찾은 지휘관이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그를 볼 수 있는 병사는 소수에 국한된다. 즉 단기적으로 그가 누릴 수 있는 극장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행위가 반복되면,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돼 회자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목표에 대한 공감은 비전에 대한 조직의 공감 여부에 달려 있다. 추진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위해 최적지를 방문하면 그만큼 리더의 메시지가 갖는 힘은 증폭된다. 바로 그 지점에 허 행장의 실리콘밸리 출장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현장에 가야 답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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