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와 이동통신이 몸과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
금융기관 쇠와 석탄 대신 ‘데이터와 이통’으로 완전무장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대표적인 외설소설 논란을 일으켰던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이성을 신뢰했던 계몽주의자에겐 믿기지 않은 결과를 몰고 온 1차 세계대전의 자화상을 고발한 소설이다. 로렌스가 바라본 그 시절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었다. 전쟁의 참상은 충분히 비극성을 배태했고, 그 당시 사람들을 정신적, 경제적 결핍으로 몰고 갈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줬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큰 전쟁을 치른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삶을 영위해나간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는 소설의 서두에서 너무도 비극적이었기에 당대의 사람들이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우리도 70여년 전, 고된 피난길 끝에 도착한 부산의 거친 야산에 움막을 치고 생명을 영위하면서 그 속에 희망을 심었듯이 말이다.

로렌스의 시선이 머물었던 당대는 석탄과 강철을 기반으로 진행된 산업혁명의 초절정기를 지나, 유럽은 물론 여타 지역으로도 산업화의 바람이 빠르게 전파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시대는 ‘비정한 철의 세계와 기계화된 탐욕의 신’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그래서 ‘악의적이고 반쯤 미친 짐승’처럼 포효하며 할퀴던 시절이기도 했다. 또한 ‘쇠와 석탄이 남자들의 몸과 영혼 깊숙한 곳까지 파먹어’ 들어가 남성성이 그 이전과 확연하게 차이 날 정도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D. H. 로렌스가 그 소설을 쓴지 딱 9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떠한가. 이성으로 감성의 격정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또 한 차례의 전쟁으로 확인한 인류는 20세기 전반을 극단의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를 보냈다. 이어 세계적 차원에서의 개발이 진행되고,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맞기도 했다. 그리고 철기 문명의 정점에서 시작된 정보화는 21세기 인류를 제4차 산업혁명으로 내몰고 있다. 

여전히 쇠와 석탄은 우리 문명을 유지하는 기본 요소로써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 인류와 달리 그 위에 금이나 은 대신 실리콘을 입혔고, 속은 데이터를 게걸스럽게 채우고 있다. 또한 존재하는 모든 점들을 연결시킬 기세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장미꽃 미래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게걸스럽게 채우던 데이터에 대한 관점이 변한듯하다. 모으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발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듯 하나금융의 김정태 회장이 데이터를 물에 비교하며 새로운 데이터론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말 인천 청라지구에 있는 하나금융통합데이터센터에서 가진 ‘디지털비전 선포식’에서 그는 “지구의 70% 이상이 물이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은 1%에 불과하다. 데이터 역시 물과 같다. 방대한 데이터 중에서 쓸 수 있는 데이터를 추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를 모아야만 분석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가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업무 절차가 개선돼 속도도 빨라지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의 데이터론에 따르면 21세기의 오늘은 데이터가 있어야 기능하는 사회다. 맞는 이야기다. 모든 금융기관들이 금융업에서 탈피해 IT회사를 지향하는 것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1%의 가용한 물로 데이터를 비유한 것도 적확하다. 그렇다면 D.H.로렌스가 오늘의 사회를 본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아마도 “데이터와 이동통신이 사람들의 몸과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갔다”고 쓰지 않을까. 몸과 영혼을 파고든 대상만 달라졌을 뿐, 비극적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