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30개 양조장에 토종효모 무상보급, 추가 예산 끊겨 중단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로 술 바라보는 정부 시선부터 바뀌어야
 

▲ 효모는 누룩과 함께 술을 양조할 때 사용하는 발효제이다. 보통의 가양주는 효모 없이 누룩만으로도 좋은 술을 만들 수 있지만 대규모 양조를 하는 상업양조에선 효모를 사용해 술을 빚는다. 사진은 각종 곡물론 만든 누룩과 액상 효모

양조의 배후 실세 효모 
지난 2009년 홍수로 양조 시설이 침수됐던 영국의 제닝스 양조장. 두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해, 24시간 동안 내린 400밀리미터의 기록적인 폭우로 양조시설 전체가 침수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보일러와 압축기, 냉각기 등 거의 모든 시설을 폐기해야 했지만 가장 큰 피해는 돈으로 복구할 수 없는 효모. 양조과정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효모가 없으면 더 이상 그 술맛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일 맥주는 상면발효를 하는 특정 균주가 있어야 하고, 흔히 우리가 마시는 라거는 하면발효 효모가 있어야 한다. 포도주도 포도껍질에 있는 효모가 시간과 함께 술을 익게 만드는 것이고 증류를 하는 위스키와 브랜디는 물론 우리 소주도 효모가 있어야 술이 될 수 있다. 발효주가 없이 증류주가 탄생할 수 없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조장에선 발효과정의 배후 실세인 효모를 생명처럼 여긴다. 

이 양조장은 다행히도 이듬해 새로운 설비를 들이고 영국 국립효모균주컬렉션(NCYC)에서 보관 중인 자신들의 효모로 맥주를 되살릴 수 있었다. 1920년대 맥주 양조업계의 필요에 의해 설립돼, 1948년부터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기관이 가지고 있는 총 시료는 4000개 정도. 그중 맥주 양조효모는 800개라고 한다. 초저온냉동고에서 보관 중인 효모가 있었으니 침수전의 맥주 맛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연발효종 찾기 나선 제빵업계
연전에 파리바게트 등 여러 브랜드를 가진 제빵업체(SPC)에서 서울대와 11년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전통누룩에서 토종 효모를 분리해낸 바 있다. 이 회사의 발표에 따르면 토종 효모 분리로 연간 70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보게 됐다고 한다. 

물론 SPC가 누룩에서 효모를 찾아낸 것은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를 통해 토종 제빵업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비록 빵의 기원은 서양의 제빵 선진국들이지만 발효종부터 독립해 신토불이의 먹거리라는 점을 내세워 시장 우위를 다진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은 ‘2017 올해의 산업기술성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 같은 토종효모에 대한 연구는 제빵업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방의 농업기술원 등에선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위해 부가상품을 개발하면서 토종 효모를 찾아 양조용 발효제로 이용하거나 장류의 발효제로 분류해 보급해왔다. 특히 전주에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은 양조용 효모 보급사업을 전담하며 토종 균주를 분리해 온 것이다.

▲ 누룩 및 곡물에서 토종 균주를 분리해서 양조용 효모로 술도가에 공급해온 한국식품연구원의 김해련 박사가 토종효모 보급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식연은 지난 4년 동안 30개 양조장에 10여개의 효모를 보급해왔다.

전통주 효모 개발 사업은 표류중
한국식품연구원이 전통주 발효제를 찾아 보급해온 것은 지난 2015년부터다. 지난 4년간 한식연이 무상 지원한 효모는 30여양조장에 10여종에 이른다.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김해련 박사에 따르면 한식연에선 지금까지 863개의 균주를 누룩과 지방에서 수집한 곡물에서 분리했다. 이중 양조 특성이 좋은 효모가 가려내 양조장에게 보급해 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농림부 주최의 우리술품평회에서 만난 김 박사는 토종효모를 찾아내 우리 술 양조에 적용해왔던 전통주 발효제 보급 사업이 올해로 종료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술의 발효제를 누룩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모의 존재는 낯설다. 전통 누룩이나 입국(흩임누룩)을 이용하면 술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상업양조는 빚은 술이 원하는 수준에 오르지 않으면 전량 폐기해야 하므로, 밑술 단계의 발효베이스를 만들지 않는 양조장에선 모두 발효제로 효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도시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대형 양조장은 물론 중소 규모의 양조장까지 프랑스에서 수입한 제빵용 효모를 넣고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수입산 쌀에 수입 효모와 입국을 넣어 빚은 술이 신토불이 막걸리로 여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한식연에선 토종 효모를 찾아 보급함으로써 전통주의 왜곡된 위상을 바로 잡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지원은 올해로 끝나고 말았다.

김 박사에 따르면 토종효모를 찾아내 양조장에 보급하는 일은 우리 술의 품질을 높이면서 표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입효모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은 물론 원재료부터 우리 것으로 술을 양조한다는 자존감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투자여력을 가진 대형 술도가에서조차 외면하고 있는 사이 우리 토종 효모의 개체수는 늘기 보다는 줄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는 균주보급 사업마저 중단돼 우리 균주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그만큼 줄게 됐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 그 이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주류 정책과 우리 농산물 소비 촉진 정도로만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주 정책의 한계가 효모 균주에까지 이르게 된 슬픈 현실인 것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답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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