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에 갇힌 알코올, 영상·소리 만나 현대인의 삶 노래

스크린에 담긴 술 스토리 중심의 새로운 영화 독법 시도

영화는 술의 맛과 향기를 영상과 소리, 그리고 배경을 통해 보여준다. 술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영화도 있고 주요한 소재로 말을 걸어오는 영화도 있다. 그것은 현대인의 삶과 술이 밀접한 까닭이다. 사진은 지난해 개봉했던 ‘리틀포레스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유일한 승리자로 등극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처음 술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인류라기보다는 붉은 색 과일을 먹이로 찾던 조류와 포유류 등이었을 것이다. 다 익은 과일은 붉은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미량의 에탄올 냄새를 풍긴다. 포식자이자 씨앗 전파자가 자신을 색으로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향기로 익은 열매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산사나무 열매를 실컷 먹은 애기여새가 에탄올에 중독되거나 개똥지빠귀가 과숙된 열매에 들어 있는 에탄올에 취해 나뭇가지에서 추락하는 일들이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다. 좀 더 덩치가 큰 포유류는 과일에 들어 있는 에탄올만으로 취하진 않는다. 다 익은 과일이 벌어지면서 빗물이 스며들어 자연스레 발효된 것을 먹은 침팬지나 우랑우탄, 심지어 코끼리까지 다량의 에탄올을 섭취하고 난동을 벌이는 경우가 있곤 한다. 

자연의 일부였던 에탄올을 인류가 취한 것은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한 결과였다. 새·포유류의 행동을 보고 모방한 인류는 문명을 일궈내면서 에탄올을 생산했다. 수렵 생활을 정리하고 집단을 이뤄 정착하게 된 것도 술을 안정적으로 양조하기 위해서였다는 학설이 나올 만큼 술과 인류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류 최고의 기호품으로 자리하게 된다.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우르의 왕 길가메시는 자신의 경쟁자를 친구로 만들기 위해 맥주를 마시게 했다.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한 대홍수를 이겨낸 노아가 비가 그친 뒤, 땅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도나무를 심는 일이었으며, 이를 수확해 만든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고 <창세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술은 인류와 함께 익어왔고 취해왔다. 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젊은이는 사냥 혹은 이웃 부족과의 전쟁에 나서기 전,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가진 제의에서 제사장이 건넨 한 잔의 술로 용기를 얻었으며, 고된 노동 끝에 수확한 곡식을 앞에 두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고대인들은 제사를 마치고 제사장과 함께 마음껏 취하기 위해 술을 들이켰다. 술은 이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같이 공유한 지문 같은 존재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그의 책 <알코올과 예술가>에서 “오늘날 문학은 술에 젖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술에 접어 있는 것은 문학만이 아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저렴하게 추출하게 되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도시 빈민들도 귀족과 부르주아처럼 얼큰하게 술에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된지 벌써 2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 사이 작가들은 술을 마시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술을 주제로 삼아 쓰기까지했는데, 그렇게 술에 젖은 문학은 20세기 들어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스크린을 통해 그 향기와 맛을 전하게 됐다.

문학이 작가의 메시지를 담은 서사를 전하든, 아니면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을 전달하든 텍스트 속에 갇혀있게 되지만 영화는 그 특성상 활자를 뛰어넘는 확장성을 보이게 된다. 특히 현대인이 가장 쉽게 소비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대인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술을 담아내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욱 강화된다. 때론 있는 그대로의 술을 보며주면서, 때론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색을 덧씌우면서 영화는 관객과 이야기를 걸게 된다. 장이모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에서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붉은 색 백주(白酒)를 만나기도 하고 오드리 웰스 감독의 〈투스카니의 태양〉에선 다이안 레인의 대사를 통해 코르투나의 보라색 향기를 접하기도 한다. 

물론 더 직접적으로 술과 인간의 만남을 만나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북부 이탈리아 전선에서 헤밍웨이는 전쟁의 실상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데, 그는 와인을 발효시키고 남은 부산물을 증류한 ‘그라파’를 마시면서 전쟁의 삭막함 그 자체를 보여주었으며(〈무기여 잘 있거라〉), 이 전쟁이 끝나고 잠시 주어진 평화의 시기 동안 파리로 몰려드는 각국의 사람 들 속에서 가난한 망명자들이 개선문 근처의 허름한 바에서 마신 사과 증류주 ‘칼바도스’는 고달픈 망명객의 심정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개선문〉). 또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지향점을 잃은 서구 젊은이들이 획일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젊음과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술과 마약에 집착하는 모습을 그린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물론 문학이다. 하지만 소설이 표현하지 못하는 술의 향기와 질감을 영상과 소리, 그리고 더해지는 배경을 통해 전달해주는 것이 영화이다.

‘수불시네마기행’은 이렇게 영화 속에서 만나는 술의 서사, 혹은 의식의 흐름을 찾아나서는 새로운 기획물이다. 2019년 황금돼지해, 독자제위의 복을 기원하며 새로운 글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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