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감독 ‘리틀 포레스트’ 슬로우 라이프 표방한 호흡 긴 영화
주인공 혜원, 물과 누룩, 고두밥으로 막걸리 만드는 장면도 등장

지난해 초 개봉해 ‘소확행’을 추구하는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던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식혜의 엿기름은 단맛을 내지만 막걸리의 누룩은 어른의 맛을 낸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막걸리를 빚으며 하는 이야기다. 혜원의 어린 시절, 그의 엄마(문소리 분)는 긴긴 겨울밤의 적막감을 버텨내기 위해 간혹 막걸리를 빚어 마셨으며, 혜원은 단맛의 식혜와 마주한다. 식혜를 마시다 엄마가 마시는 막걸리가 궁금했던 어린 혜원은 술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시큼하고 쿰쿰한 ‘어른의 맛’이라며 되물린다.

엿기름과 누룩은 모두 곡물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발효제들이다. 하지만 엿기름은 단맛을 내는데 그치고 누룩은 그 단맛을 알코올까지 전환시킨다. 그리고 알코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맛이 바로 ‘시금털털한’ 어른들의 맛인 것이다.

말차나 와사비 같은 맛은 어린 아이가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맛이다. 이런 종류의 맛을 일본에서는 ‘오토나노 아지(大人の味)’라고 말한다. 단맛보다는 알코올의 쓴맛과 시금털털한 맛이 중심인 막걸리도 당연히 어른의 맛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 혜원이 엄마를 추억하며 막걸리를 직접 빚어, 으스스한 바람 맞으며 친구들과 나누어 마시는 장면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다시 찾은 시골집에서 혜원은 어느 겨울날 가출한 어머니를 추억하며 막걸리를 빚는다. 고두밥과 누룩, 그리고 물만 있으면 빚을 수 있는 우리 술 막걸리. 그리고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 마실 사람”이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으스스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 차가운 바람이 선술집(혹은 포장마차) 포장을 펄럭거리며 들이칠 때 그 바람을 마주하며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요즘 청춘들의 이야기다. 십수년간 청년들에게 주어진 좋은 일자리는 줄어만 가고, 그렇게 마주한 2010년대의 젊은이들은 사상 최고의 청년실업률 속에서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세대로 살아간다. 그나마 확실한 일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할 정도의 극심한 경쟁률 속에 치러지는 공무원 시험과 임용고시 정도. 그러니 청춘들이 노량진에 몸을 의탁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희소한 확률에 기대어 좁디좁은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그런 청춘들의 이야기가 잘 익은 막걸리처럼 빚어진 영화가 바로 <리틀 포레스트>다. 슬로우라이프를 표방하며 수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삼시세끼’의 영화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단백하고 정갈한 음식이 등장하고, 호흡도 요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긴 영화다. 이런 점들이 ‘소확행’을 추구하는 요즘 청춘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 저예산 영화로 보기 드문 150만의 흥행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작은 숲’은 어떤 의미일까? 숲은 철기문명이 등장하기 전까진 어둠과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잔혹한 유럽의 동화 속에서 숲은 마녀와 마귀의 공간으로 그려지기 일쑤였고, 반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신화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숲을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역 혹은 사원에 대응하는 공간으로 해석한다. 북유럽에 산재해 있는 나무숭배 사상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때론 피난처가 돼주었던 숲은 일종의 ‘소도’ 같은 존재로 이해됐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잠시 목표를 상실한 청춘들이 다시 재충전해서 새로운 목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휴식 없이 달려오다 지친 청춘들이 피난처도 없이 내몰리는 모습이 임순례 감독의 눈에 무척 안타까워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만의 숲을 찾는 여유를 가질 것을, 그리고 긴 호흡에서 삶을 대할 것을 임 감독은 권하고 있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어헤친 휴식을 말하진 않는다. 겨울 술을 빚어 친구들과 마시면서도 마루의 문을 닫지 않고 으스스한 바람이 술의 제 맛을 이끌어낸다는 주인공 혜원의 대사는 휴식과 긴장 사이의 관계를 중의적으로 해석한 것일게다.

막걸리가 휴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맞지만, 만취해서 일을 그르치지는 말자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이 빚던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기에 좋은 계절이다. 청춘들은 오늘의 휴식을 위해서, 그리고 그 시절을 벗어난 이들은 요즘 청춘들을 생각하며 막걸리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싶다.

맛있게 막걸리를 빚는 방법

우선 찹쌀 1킬로그램을 준비하고 누룩은 200그램, 그리고 물은 1.5리터를 준비한다. 찹쌀은 씻어 두세시간 이상 물에 불렸다가 물을 뺀 뒤 찜솥에 올린다. 밥솥에서 끓이듯이 익히는 것이 아니라 떡처럼 쪄서 익히는 것이다.

다 쪄진 고두밥을 펼쳐 식히고 준비한 누룩을 넣어 물과 함께 20~30분 정도 손바닥을 펼쳐 고르게 치댄다. 이 과정은 고두밥이 누룩을 더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다. 이후 깨끗하게 소독한 스텐리스 용기나 침출주용 술통에 넣어 보름에서 20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통은 밀봉하는 것이 아니라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 있도록 에어록을 설치하거나 면보로 입구를 막고 뚜껑을 약간 느슨하게 덮어둔다.

처음 일주일 이상은 하루에 두세 번 소독한 주걱으로 술을 휘저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탄수화물을 당분으로 전환시킬 효소와 당분을 알코올로 바꿔줄 효모 개체수가 늘게 된다. 단맛의 술을 즐기려면 물의 비율을 줄이면 되고, 신맛을 살리려면 물의 비율을 높이면 된다. 고조리서에 등장하는 명주를 빚으려면 덧술을 두어 차례 더 줘 100일 정도 저온에서 발효숙성하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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