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골든서클’ 고급화된 미국 위스키 이미지 돋보이게 만들어
2019년 최고 위스키, 버번 ‘윌리엄 라루웰러 128.2프루프’가 차지

버번위스키의 위상을 높여준 영화 ‘킹스맨 골든서클’ 포스터
버번위스키의 위상을 높여준 영화 ‘킹스맨 골든서클’ 포스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서부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술을 꼽으라하면 단연 버번위스키일 것이다. 아직 동부의 질서가 미치지 않았던 미국의 서부 개척기,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웠던 시절, 악당이든 보안관이든 조그마한 바를 찾으면 으레 위스키를 주문했고, 주점 주인은 스트레이트 잔에 위스키를 내놓았다.

동부의 자본가들은 유럽에서 ‘신사의 술’로 대접받던 스카치위스키 맛에 흠뻑 빠져 있을 때, 서부의 건맨들은 옥수수로 거칠게 증류한 버번위스키로 질서의 공백 상태가 주는 극한 긴장을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증류되고, 옥수수의 비중이 51%를 넘어서고, 증류를 마친 시점에서의 알코올 도수가 160프루프(1프루프=0.5도)를 넘어서지 않아야 하고, 숙성을 위한 오크통은 반드시 불에 그슬려야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버번으로 지칭될 수 있는 이 위스키는 1980년대까지 콜라 등의 음료와 칵테일해서 마시는 정도의 술로 여겨졌다.

당연히 영화 속에 등장하던 버번도 하찮은 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86년 개봉됐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이었다. 감정기복이 괴기할 정도로 심한 사이코 캐릭터의 프랭크 부스(데니스 호퍼 분)의 연기가 명징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이 영화에서 미치광이 부스는 화를 내며 버번을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즉 간 질환을 앓고 있는 주정뱅이나 사디스트 악당들의 술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다. 술의 부정적인 이미지만큼 당시 버번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결과 켄터키 주에서 버번을 생산하던 증류소들이 여럿 문을 닫기도 했다.

그랬던 버번이 2010년대에 들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주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밍밍한 대기업 맥주의 인기는 꺾인 지 오래됐고, 보드카와 칵테일이 대도시 소비자의 입맛을 장악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소비자들이 더 좋은 술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동인은 가처분 소득의 증가와 미식 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식에 대한 요구는 고급 주류 시장으로 이어지면서, ‘정통’을 찾아 헤매던 미식가들이 버번에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콜라와 칵테일로 마셔왔던 짐빔이나 잭 다니엘스 등과 같은 값싼 버번이 아닌 고급 버번의 소비로 연결됐고, 굳게 닫혀있던 증류소들도 다시 영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읽어낸 다국적 주류 대기업이 버번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 이른다. 예컨대 세계 최대 주류기업 중 하나인 디아지오가 ‘블릿’ 버번을 생산하기 위해 지난해 켄터키(셸비 카운티) 주에 1억3000만 달러 투자를 밝힌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똑같이 감지된다. 신사들의 술 ‘위스키’를 주요한 소재로 삼는 영화 장르가 스파이 영화인데, 지난 2014년 개봉한 킹스맨 1편에서는 ‘달모어 62년산’을 필두로 영국의 스카치위스키가 중심에 섰으나 지난 2017년 개봉한 킹스맨 2편(골든서클)에서는 미국의 버번위스키가 전면에 부상한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정보조직 킹스맨. 신사들의 나라답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정보조직이 꾸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범죄 집단의 공격에 조직이 무참하게 파괴된다. 규약에 따라 미국의 형제조직 ‘스테이츠맨’을 찾아가 조직을 파괴한 범죄조직 골든서클을 응징하는 한편 킹스맨 조직을 복원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

그런데 ‘스테이츠맨’의 본부가 켄터키 주에 있는 버번위스키 증류소다. 그리고 이 조직의 요원들의 이름도 모두 위스키, 샴페인, 데킬라 등의 술 이름을 쓰고 있다. 그리고 작전에 성공한 뒤 마시는 술도 당연히 버번위스키. 즉 킹스맨 2를 통해 버번이 화려하게 데뷔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켄터키에 있는 올드포레스터 증류소에선 스테이츠맨이라는 이름의 버번을 한정판으로 출시하기까지 한다.  

버번의 화려한 부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와인처럼 위스키에도 평점을 매기면서 위스키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짐 머레이가 지난해 연말 2019년의 세계 최고의 위스키를 선정한 바 있는데, 여기서도 1위를 미국산 버번위스키인 ‘윌리엄 라루 웰러 128.2 프루프’가 차지했다. 2위는 싱글몰트인 ‘글렌그란트 18년 레어에디션’이, 그리고 3위는 라이(호밀) 위스키인 ‘토머스 H. 핸디 사제락 라이 127.2프루프’가 선정됐다.

이처럼 미국의 독립전쟁기 그들을 도운 프랑스의 브르봉 왕조를 기리면서 버번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미국의 위스키가 주류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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