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파파칼리아티스 감독판 ‘향연’
경제위기에 난민까지, 현대 그리스 속살 그대로 보여줘

‘나의 사랑, 그리스’ 영화 포스터(자료=씨네큐브)
‘나의 사랑, 그리스’ 영화 포스터(자료=씨네큐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플라톤의 <향연>은 희곡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아가톤을 축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후배들이 잔치를 벌이면서 ‘사랑’에 대해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즉 소크라테스 당대의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런데 왜 ‘향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향연은 그리스어로 ‘심포시온’, 영어의 ‘심포지엄’의 어원이다. 오늘날 학술행사를 일컫는 단어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선 단순한 학술행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포도주의 원산지는 조지아와 이란서부의 자그로스 산맥.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을 추적하니 7000년 전쯤 와인 양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술을 문명의 술로 위상을 높여준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다. 2500년 전 지중해 문명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즐겨 마시면서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에서의 와인 음용법은 지금과 달랐다. 와인에 적당량의 물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낮춰 마셨던 것이다. 이유는 취기로 대화나 토론이 중단되면 안됐기 때문에, 포도주 원액을 음용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물에 희석시키지 않고 마시는 행위를 이들은 ‘야만적’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심포시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포도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만취한 알키비아데스가 입장하기 전까지 이들은 전날의 숙취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고 향연을 즐기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이들은 서로가 알고 있는 사랑, 혹은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에 대해 토론한다.

모든 관계는 소통에서 시작되고, 그 소통이 사랑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사랑 그리스’의 한 장면 (자료 : 씨네큐브)
모든 관계는 소통에서 시작되고, 그 소통이 사랑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사랑 그리스’의 한 장면 (자료 : 씨네큐브)

연전에 개봉한 영화중에 ‘나의 사랑, 그리스’라는 작품이 있다. 원제는 ‘Worlds Apart’. 즉 ‘떨어진 세계’ 정도의 뜻을 가진 제목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시리아 내전에 의한 난민 문제 등 사회성 짙은 소재를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신예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작품 중 지오르고 역)판 <향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문학적 지식이 잘 녹아있는 수작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향연>만큼 이 영화에서도 술은 주요한 소재가 아니다. 재정위기의 고통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그리스인의 일상과 난민 문제를 이야기하는데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 편의 옴니버스 구성 중에 중년과 장년의 사랑 이야기에 해당 되는 ‘로세프트 500㎎’과 ‘세컨드 찬수’ 편에서 각각 소통의 도구로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포도주가 등장한다. 즉 ‘사랑의 근본은 소통과 배려’라는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도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별개의 사랑 이야기 세 편이지만, 마지막 중년의 사랑에서 합쳐져 반전의 묘미까지 더해준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위기를 넘기고 있는 그리스의 불편한 속살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관용을 의미하는 정교회 행렬에서 힐링 포인트를 잡아내기도 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대목은 ‘어떻게 타자와 만날 것인가’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 줄곧 투르크 국가로부터 핍박 받아왔던 그리스의 아픔이 여전히 그리스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방식으로 타자를 대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라는 것을 감독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같는 미덕은 에로스에 대한 J.K 시몬스(극중 세바스찬 역)의 마지막 내레이션에 잘 담겨 있는 듯싶다.

그리스의 술

포도주와 관련해서 그리스는 문명의 출발점과 같은 곳이다. 마시면 취하는 단순한 음료가 이곳에선 문화적 소비의 대상으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이 문화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로마제국이지만, 그들이 그 문화를 향유하고 싶었을 만큼 그리스의 와인은 문화적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그리스는 연중 강수량이 600㎜ 이하다. 퍽퍽하고 건조한 기후지만 포도와 올리브 나무에겐 최적의 생육환경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와인은 전역에서 생산된다. 그것도 350종 이상의 토착 품종들이다. 우리가 아는 피노누아나 카베르네쇼비뇽 등의 품종은 모두 그리스 토착 품종들의 변형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1100만의 인구지만 이 나라의 와인 소비량은 1인당 32.5리터로 세계 8위이며, 생산량은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그리스 와인은 산토리니와 테살로니키 지역의 와인들이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술중에 ‘아니스’라는 향신료를 사용한 ‘우조(Ouzo)’라는 술이 있다. 터키의 ‘라키’와 비슷한 술로, 와인을 만들고 남은 부수물을 이용해서 증류한 뒤 아니스와 고수씨 정향 등을 넣어 숙성시킨 술이다. 그리스의 국민 술이라고 불릴 정도니, 우리 식으로 하면 희석식 소주로 보면 될 듯싶다. 이 술의 특징은 물을 넣어 희석시키면 뿌옇게 색깔이 탁해진다는 것.

그리스의 맥주는 페일 라거와 필스너 계열의 맥주가 주로 생산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맥주는 ‘픽스 헬라스’와 미토스, 알파 등의 술은 라거이며 필스너 타입의 니소스 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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