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빈 Sh수협은행장, 전략회의서 정확한 현실 인식 주문
선불교 화두 ‘조고각하’ 인용해 10% 더 뛰는 조직문화 당부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산사의 법당 주련이나 선방의 댓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글자가 있다. 주련, 즉 법당의 기둥이나 댓돌 위에 써놓은 글자이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달라’는 뜻의 한자어다. 그런데 작은 의미에선 신발을 잘 놓아달라는 뜻의 사자성어지만 불교에서 담고 있는 뜻은 광대하기 그지없다.

그 단어는 ‘조고각하((照顧脚下)’다. 풀이하자면 ‘자기 발밑을 비추어보라’는 정도. 선방이든 법당이든 스님과 사부대중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좁은 댓돌 위에 놓을 수 있는 신발의 숫자는 제한돼 있고, 함부로 벗어놓으면 그 혼잡도는 더할 터. 다른 사람의 손으로 빌어 정리하지 않으려면 신발을 벗는 사람 스스로 신경 써서 벗어놓아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쓰인 글자이지만 이 단어는 선불교의 화두 중 하나에서 출발하고 있다.

중국 송나라 시절 오조 법연스님에게 삼불이라 불리는 세 사람의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법연과 세 제자가 밤길을 걷다가 부는 바람에 등불이 꺼져 사방이 암흑에 휩싸였다. 이 상황에서 법연스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다. 첫째 제자는 “채색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고 답하고, 둘째 제자는 “쇠로 된 뱀이 옛길을 건너가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 제자 원오스님이 “발밑을 비추어보라” 즉 조고각하라고 답한다.

첫째와 둘째 제자의 답은 암흑에 휩싸여 있는 상황, 즉 일종의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지극히 관념적이다. 목적도 보이지 않고 실행계획도 불투명하다. 짧은 지식으로 선불교의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원오스님의 답은 명쾌하다. 등불이 꺼진 칠흑의 상황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내 발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기보다 먼 곳의 높은 산이나 앞서나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에 집중하기 십상이다. 자신의 목표 내지 극복 대상에게 먼저 눈길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선이 타자에게 가 있는 상황에서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치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지피지기, 백전불퇴’의 속뜻처럼 내가 아닌 타자 중심의 세계관은 자신을 더욱 불리한 조건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조고각하는 비단 불교적 화두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의 봉착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직업과 직급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리더들은 솔선수범해서 난관을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가장 주요한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자원배분의 왜곡 내지 수요불일치 등 무엇인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부족한 자원을 최적화해서 위기의 본질을 해소해내야 하는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발밑을 먼저 바라봐야 할 사람들은 우리 모두인 것이다.

최근 Sh수협은행의 이동빈 은행장이 2분기 경영전략회의를 갖고 조고각하를 말했다고 한다. 1분기 실적에 대한 강평을 하면서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우리의 상황을 명확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다소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했지만,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점에서 명쾌하게 위기요인을 진단한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계측해서 그 실상을 끄집어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한 진단에 이은 후속조치도 주목된다. 모든 금융회사들이 초유의 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선 그에 걸맞은 후속조치는 더욱 절실할 것이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핀테크가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새로운 질서로 편입시키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조직 내부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더욱 자기 자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발밑은 문제의 본원적 출발점이면서 해결책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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