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진보 및 경쟁 격화로 금융권 보수색 스스로 벗어던져
진옥동 신한은행장, 직접 일정 챙기고 기사 퇴근 후 운전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혁신의 바람이 보수적인 금융회사에도 불기는 부는 것 같다. 모바일과 인공지능 등의 정보기술에 대한 수용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기술의 진보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따라서 기술 진보에 의한 변화는 불가역적인 대세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그릇은 다른 문제다.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급격한 유입과 격화되고 있는 경쟁 분위기 탓인지 몰라도 금융권 CEO들의 일상이 정보기술 업체마냥 큰 틀에서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애자일은 특별하지도 않은 대상이 될 정도로, 금융권은 애자일 조직을 적극 수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본부장금 이상 임원들의 집무실 크기가 줄고 있다. 쉽게 만들고 부수기 위해선 형식적인 공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임원들의 공간을 줄여서 실무가 진행될 수 있는 소규모 공간을 여럿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정보기술 업체를 표방한 금융회사가 늘면서 디지털 관련 부서의 사무실에는 칸막이조차 없애는 분위기다. 빠르게 소통하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다.

더 큰 변화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에서 느껴지고 있다. 우선 수행비서를 두지 않고 운전기사 1인만 배치했다고 한다.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 업무외 시간의 운전은 손수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정을 챙기는 수행비서도 두지 않았으니 은행장이 직접 자신의 일정을 챙기면서 운전기사 퇴근 이후에는 자가 운전으로 일정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그동안의 은행권 문화로 비춰보면 있을 수 없는 변화다. 은행장 스스로도, 아니 조직 자체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 점에서 진 행장의 손수 운전이 가져올 파장은 의미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의 요체는 ‘탈권위’다. 수직적인 보고체계는 물론, 인사시스템 등은 혁신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카카오톡 등의 SNS를 이용한 직접 보고를 받는 CEO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리더의 무게감을 권위에서 만들고자하는 경영자들도 많다. 자리가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분위기가 이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행보는 자행의 임원들은 물론 여타 은행의 CEO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리더가 직접 나서서 변화를 주도하는 문화는 은행권에선 매우 새롭다.

북방민족과의 전투를 통해 전투력을 키웠던 조나라의 무령왕은 춘추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복식개혁을 단행한다. 전차를 포기하고 기병을 육성해 더 민첩한 전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무령왕 스스로 오랑캐의 복식을 착용했다. 유럽사를 살펴보면 더 많은 솔선의 사례가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 등 유럽의 봉건시대에 벌어진 각 전쟁에서 귀족과 왕족은 늘 선봉에 섰다. 이 같은 전통은 때로는 귀족 등 리딩 그룹에겐 치명적인 타격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윈스턴 처칠은 육군사관학교 동기생 150명 중에서 제1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4명 중 한명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통이 유지되는 까닭은 솔선의 순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진옥동 행장의 솔선이 어떤 효과로 나타날지 관심을 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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