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13년차 이근왕 대표, 지역과 함께 하는 소박한 술도가 운영
막걸리 비수기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소주면허내고 증류기 도입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강의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돼 모래턱이 충분하고, 강의 양쪽은 봄·가을로 화사한 색깔로 꽃단장을 하는 섬진강. 사철 멋있는 풍광과 함께 먹거리도 풍부해 연중 관광객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곳, 하동.
그 덕에 화개장터가 서있는 시장터의 땅값이 평당 2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의 소읍 같은 곳의 땅값이 대도시의 웬만한 곳보다 가격이 높다하니 그저 놀랄 수밖에.
이 하동 땅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가이드까지 마다하지 않는 양조장 대표가 있다.
귀향 13년차의 하동합동양조장의 이근왕 대표가 바로 그다. 대형 식품회사에서 외식유통업무를 처리하다 귀향한 이 대표는 대부분의 면단위 양조장처럼 가업으로 술도가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막걸리 양조장의 위상은 2012년을 정점으로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한미한 사업일 뿐. 그런데도 지리산을 배경에 두고 흐르는 섬진강 마냥 이 대표의 꿈은 살아있는 생태계 그대로다.
술에 대한 철학부터 지역사회와의 호흡에 이르기까지 그에겐 기존 술도가와는 다른 맛과 멋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술은 그 흔한 인공감미료가 들어갔지만 대도시 막걸리만큼 단맛이 강하지 않고 탄산감도 무리하지 않다. 소박한 밥상에 오른 제철 나물요리만큼 그저 상큼할 따름이다.
귀향한 뒤 양조장 발효실 천장과 벽에 눌러 있던 검은색 물질들을 식품안전 차원에서 제거하라는 관할 기관의 지시에 따라 없애버린 사실을, 술을 빚으며 후회하게 됐다는 그의 소회는 술을 알아가는 젊은 양조인의 꿈과 희망으로도 읽혀졌다. 그 검은 색 물질은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소주를 만드는 술도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국이기 때문이다. 첨언하면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위스키가 한 해에 대략 2~3% 정도 천사의 몫으로 증발되는데, 그 숙성고 주변엔 여지없이 흑국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엔 종국실에서 입국을 빚었지만 지금은 인건비 등의 이유로 입국와 효모를 모두 사다 사용한다고 말하면서도 5년 뒤 자신의 술은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서 술에 대한 그의 마음자세가 읽혀진다. 즉 좋은 술은 좋은 재료가 만든다는 기본 철학에 입각해 인공감미료 없이도 효모의 역할만으로 술맛과 향을 낼 수 있는 그런 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매칭펀드로 양조장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신식 증류기를 도입한 하동양조장. 500리터를 증류할 수 있는 이 기계와 오래된 양조장의 건물양식은 묘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던진 질문은 ‘왜 소주를 내리려 하는가’였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막걸리는 봄철 반짝 수요가 일다가 여름부터 비수기에 접어들어서 결국 사철 양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도입했다”고 말한다.
그럼 왜 대도시 지역의 전통주 주점 마케팅을 펼치지 않느냐고 이어지는 질문에 그의 답은 소박하게 다가왔다. 지역을 찾아온 사람들이 찾아주는 술을 만들겠다는 것. 마을 사람들도 찾고 타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도 마실 수 있는 그런 술을 만들어야 진정한 로컬푸드의 완성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근왕 대표를 찾은 날 저녁, 섬진강변에선 하동 지역시민단체들이 개최하는 작은 문화행사가 있었다. 달마중 행사라 이름 붙여진 행사에선 시조와 창, 그리고 시낭송 등이 변변한 조명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행사의 진행요원으로 동분서주하는 이 대표의 모습에서 하동 술이 담아낼 미래를 그려본다.
그는 이밖에도 하동의 몇몇 지인들과 조합을 구성해 주민공정여행 프로그램 ‘놀루와’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을 가장 잘 아는 만큼 구석구석 스토리와 함께 가이드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일 것이다.
부부송은 물론 문암송, 패러글라이딩을 멋지게 펼칠 수 있는 형제봉, 그리고 멋진 석양과 함께 지리산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는 구제봉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그의 입담과 함께 소개 되는 가운데 마시는 막걸리는 분명 더 맛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