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전 동굴벽화 앞에서 사냥 기원하는 제사 지내듯
4차산업 혁명 세대는 새로운 코딩 벽화에 간절함 담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미술사가들은 인류 최초의 예술을 현생 인류가 어렵게 극복해낸 빙하기 이후, 동굴에 그린 벽화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알타미라를 포함해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된 프랑스 론강 유역의 쇼베 동굴, 스페인의 라스코 동굴 및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동굴 등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림의 대상은 유사했던 구석기 시대를 그 기원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들소의 무리, 겹쳐져 있는 말머리 그림, 솟대마냥 나무 위에 새가 그려진 그림, 청소년쯤으로 보이는 손바닥들이 벽 한가득 채워져 있는 손 그림까지 소재는 다양했다.

이들 동굴의 공통점 중 하나는 출구가 찾기 어렵고 찾아도 들어가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이와 함께 어렵게 수평 및 수직 이동을 해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을 맞이할 수 있는데 그쯤가야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횃불 이외의 변변한 조명도 없는 상황에서 누대에 걸쳐 그려진 황소의 그림에는 인위적으로 뾰쪽한 물건에 긁힌 자국이 여럿 존재하고 동물의 가느다란 뼈로 만든 대롱에 여러 물감을 넣어 손바닥 모양이 음영으로 찍혀 있는 그림도 여러 대륙에 걸쳐 등장한다.

이 그림을 확인한 고고학자들은 앞서의 그림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치른 종교적 제의로 해석하고, 뒤의 손바닥 그림은 어른의 지도 아래 진행된 성인식쯤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대략 1만 년 전후, 즉 아직은 정착 하지 않고 수렵채취 생활을 했던 구석기 시대로 보고 있다.

당시의 인류는 인간보다 강한 포식자와 경쟁하며 식량을 조달해야 했기에 단체를 이뤄 사냥을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사냥에서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성스러운 장소에서 집단으로 제의활동을 치렀던 것이다. 또 사냥을 나갈 수 있는 성인이 된 청소년들에겐 포식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담력과 협동심 등을 키울 목적으로 성년식이라는 통과의례를 마련했다.

이러한 전통은 수렵에서 정착으로, 그리고 농경사회로 이행하면서 변화된다. 물론 변화는 제의의 형식과 내용에 국한된 것이지 본질은 1만 년 전이나 이후 신석기혁명의 시대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특히 기원전 500년경의 축의 시대를 거치고 고등종교가 등장하면서 각종 제의는 더 세련된 형태로 변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당시의 현생 인류가 가지고 있던 제의에 대한 태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동굴벽화가 나온 지 1만 년의 시간이 흘러, 인류는 다시 노마드를 주장하고 있다. 정보기술과 모바일 등의 환경이 촘촘하게 조성되면서 인류는 굳이 정착하지 않아도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인간을 대신해 힘들고 단순한 노동을 해주고 있으며 점차 노동으로부터도 해방될 전망이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서부터 시작됐을 제의 혹은 제사는 간절한 무엇인가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고등종교가 등장한 이후에도 ‘간절한 염원’을 기원하고 희망하는 인류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현재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고 희망과 기대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틀거리에 맞는 제의적 형태가 미완일 뿐이다. 

그런데 이 틀거리의 한 축은 코딩이 차지할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 언어를 이용한 코딩이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것 또한 분명하다. 이와 함께 기업의 리더들은 더 많은 시간을 디지털 관련 업무에 할애할 것이고, 심지어 디지털 관련 공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것이다. 여기서 마련될 디지털 제의의 모습이 어떤 것일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구성요소들은 거의 다 나타났다.

1만 년 전의 동굴벽화처럼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벽화도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 벽화 앞에서 제의를 지내듯 디지털 센터를 방문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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