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소리로 디지털만 외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모순
성공하려면 삐딱한 시선으로 결과물 바라볼 수 있어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보고 있는 지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혁명’이라는 이름의 대변혁 과정은 항상 다양한 목소리와 함께 했다. 혁명이 불러일으킨 권력의 진공상태 덕분에 그 공간을 노리고 다양한 요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혁명은 다르다. 너무도 분명하게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가 되어 ‘디지털’이라는 단어만 외치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 물론 이 혁명은 정치권력을 두고 서로 다른 이해집단이 다투는 정치투쟁은 아니다. 선사시대, 정착을 선택한 인류의 첫 혁명인 농업혁명이나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원시적 자본을 축적한 유럽이 보다 강력한 경제적 재생산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선택했던 산업혁명처럼 경제 권력과 질서를 재편하는 혁명이다 보니, 전개과정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인간의 신체 감각기관 중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곳은 눈이다. 그래서 귀나 입보다 빠르다. 그뿐만 아니다. 처리하는 정보의 양도 가장 많다. 전체 정보의 90% 정도를 처리한다. 눈으로 확인한 정보를 뇌가 가장 신뢰하는 형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인간의 시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대개의 동물은 다른 방향에 있는 사물이나 경쟁자를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한다. 눈동자만을 돌려서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를 돌리는 행위만으로도 주변을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자신이 현재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른 인간 내지는 경쟁 동물에게 보여주는 결과도 함께 낳는다.

즉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음에도 진화는 그렇게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화는 왜 일어난 것인가. 답은 협력이다. 서로가 시선을 공유하면서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보다 강한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선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 혹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이유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대해서도 뇌는 계속 그런 착각을 버리기 십상이다.

예를 하나들어 보자. 지동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황혼이 질 무렵 태양이 지는 것을 지구가 태양을 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지동설이 증명된 뒤에도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서쪽으로 지고 있는 해이다 보니, 지식과 눈에 보이는 현상의 불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그나마 과학적 지식으로 습득된 내용이다보니 뇌가 혼돈에 빠지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디지털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보자. 모든 금융회사에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흔히 디지털 역량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무를 디지털로 해석해낼 수 있는 분석능력과 분석한 결과를 디지털로 옮길 수 있는 코딩능력을 주로 생각한다. 디지털로 구현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CEO들은 디지털 현장을 방문하거나 관련 솔루션을 발표하면서 관련 메시지를 생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라이프를 강조하는 신입직원 강연 등으로 메시지를 보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하는 것만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시선을 공유하면서 디지털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혁명의 여러 단계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모바일과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이를 생산성으로 연결 짓는 행위는 인간의 몫이다. 즉 디지털라이즈된 내용을 인간의 편의성 중심으로 해석해야만 성과가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디지털을 품어낼 인간의 시선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같은 목소리로 하나의 방향을 보고 있지만, 일부의 사람은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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