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단맛 싫어 찹쌀 아닌 멥쌀로 양조하는 김원호 대표
드라이하고 담백한 맛 추구, 특산 ‘닥나무’ 활용한 막걸리도 계획

멥쌀로 드라이한 맛의 술을 빚고 있는 원주의 모월양조장. 사진은 올해 3월 신축한 영조장 내, 발효시설에서 자신이 빚고 있는 술을 설명하고 있는 김원호 대표
멥쌀로 드라이한 맛의 술을 빚고 있는 원주의 모월양조장. 사진은 올해 3월 신축한 영조장 내, 발효시설에서 자신이 빚고 있는 술을 설명하고 있는 김원호 대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강원도 원주는 텃세가 없는 곳이다. 공단이 들어서고 외지인이 많아지면서 그리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원주 땅은 외지인에 대해 벽안시하거나 배타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게 품어주던 곳이 이 터의 장점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모월산(母月山)이라는 지명.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치악산의 다른 이름이다. 어머니 같고 달 같은 산이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임금도 품고 도둑도 품는 존재가 어머니라는 것이다. 달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달빛을 비춰주는 대자연. 원주 땅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담긴 지명인 것이다.
 
언제부터 ‘모월산’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고향 원주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고 장일순 선생이 남긴 글에 ‘모월’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엄혹했던 70~80년대의 공간에서 한살림운동 및 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면서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자연주의자이기도 했던 그의 ‘모월론’은 원주 곳곳에 새겨져 있다.

봄의 신록이 남에서 북으로 대간과 산맥을 따라 짙어가던 지난달 찾은 원주의 술도가에도 ‘모월’은 깃들어 있었다. 30년 지기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다양한 술을 빚으면서 2016년, 알코올 도수 41도의 ‘모월 인’과 13도의 ‘모월 연’을 정식 출시하며 전통주 시장을 본격 노크한 술도가, 협동조합 모월이 그 주인공이다.

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은 원주가 고향인 기계 엔지니어 출신의 김원호씨. 20년 이상 대기업의 엔지니어링 생활을 하던 그는 지금도 그 일을 하면서 협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하지만 술의 출발점은 보통의 양조인들과 다르다.

쌀시장 개방을 두고 농민시위가 한창일 때, 김 대표는 시위를 마친 고향친구들이 마시는 술을 보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 쌀을 보호하자고 나선 시위 끝에 마시고 있는 술은 외국산 쌀로 빚어진 막걸리였던 것이다. 외피는 우리 것이지만 실제는 우리 것이 아닌 상황이 아이러니해서 원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 상황을 말하게 됐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양조장까지 확장됐다.

출발점도 그렇지만 만들고 있는 술도 개성이 강하다.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벤처대학 등을 다니며 전통주 양조를 배운 김 대표는 여타의 술도가와 달리 단맛을 추구하지 않는다. 술도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내려하는 단맛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있다.

모월은 원주 치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머니 같고 달 같다는 뜻의 모월. 사진은 이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 왼쪽이 약주인 ‘모월 연’이고 오른쪽이 소주인 ‘모월 인’이다.
모월은 원주 치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머니 같고 달 같다는 뜻의 모월. 사진은 이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 왼쪽이 약주인 ‘모월 연’이고 오른쪽이 소주인 ‘모월 인’이다.

쌀과 물, 누룩으로 술을 빚는 것은 같지만, 단맛을 내려는 술도가에선 찹쌀을 주로 사용하게 되는데 ‘모월’에선 멥쌀만 사용한다. 이양주, 즉 술밥을 두 번 줘서 100여일 정도 발효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빚는 모월의 술은 멥쌀만을 사용해 일본의 사케 마냥 드라이하면서 담백한 맛을 가진다. 소주도 이런 약주를 증류한 만큼 쌀의 맛과 향을 잘 간직한 술맛을 내고 있다. 특히 숙취 제거를 위해 증류과정에서 처음과 마지막에 올라오는 증류액은 취하지 않는다. 즉 알코올 도수 35% 이후에 나오는 후류는 재증류할 때 포함시키지만 증류 초기에 나오는 초류는 아예 술 양조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으로 새로운 술을 기획하고 있다. 약주와 소주에서 출발했지만 우리 술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인 막걸리를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주의 특산품 중 하나인 ‘한지’에 초점을 맞췄다. 전통 한지로 유명한 원주의 이미지를 활용하면서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가 가진 구수한 단맛을 술에 깃들게 하려는 것이다. 제품명도 ‘모월 닥주’로 정해 막걸리의 한자어인 ‘탁주’와 각운을 맞춘다는 생각이다.

이 밖에도 그는 크래프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술을 기획하고자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만큼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에 초점을 맞춘 양조장을 꿈꾸고 있다. 어머니 같고 달 같은 술을 만들어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마실 수 있는 그런 술을 말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