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암흑을 뚫고 나온 것은 사람 중심 세계관이듯
디지털과 IT는 수단일 뿐, 활용은 영원히 사람들의 몫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중세의 암흑은 오직 신만이 삶의 지표였던 시절이다. 신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연히 인간도 그저 하나의 피조물일 뿐, 정치적 종교적 의사결정의 중심엔 교회의 교리와 성직자만이 있었던 시절이다.

특히 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모든 서구의 중세인들을 신 앞에 모이게 했다. 죽음의 공포는 심판으로 연결됐고 천국을 간절히 바라는 종교적 삶은 종교적 의무감에 시달리게 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1000년 정도의 세월을 보낸 인류가 인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흑사병으로 암흑의 정점을 찍고 있던 14세기 중반 이후였다. 역사는 항시 인류에게 가장 어두운 순간에 여명이 준비된다는 교훈을 알려줬듯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의 어둠을 걷어낸 첫발은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였다. 보카치오는 자신의 주저 <데카메론>에서 인간을 노래한다. 이 책의 중심 무대는 흑사병이 만연했던 피렌체. 7명의 젊은 여인과 3명의 청년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골별장으로 들어가 열흘 동안 약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에는 자연스레 당시 시대상을 담아내면서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말하게 된다. 우연히도 무대는 피렌체였지만, 보카치오의 고민은 꽃의 도시 피렌체가 르네상스를 걸머지고 가는 형국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

페트라르카, 계관시인이자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사람 역시 근원을 찾으면 피렌체다. <신곡>의 저자 단테는 귀족당이 집권하면서 망명을 선택하게 되고, 피렌체 정부는 단테를 도왔던 인물들을 고발하게 된다. 그 때 고발당해 추방까지 당한 페트라코라는 인물의 아들이 페트라르카이다. 

그는 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보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자연을 노래한 음유시인이기도 하다. 키케로의 저작을 접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을 찾아 읽으려 했던, 그래서 그를 가르켜 ‘라틴 서방에 고대 문화에 대한 애정을 도입한 첫 번째 현대인’이라는 별호까지 받게 된다. 

중세 이야기가 길어졌다. 인간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되면서, 특히 지난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코드가 세상을 풀어가는 핵심 키워드가 되면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나이와 업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디지털만 이야기하는 세상. 그래서 은행장이든 지주회사의 회장이든 여타 금융회사의 대표이사이든 모두가 ‘디지털화’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모든 은행이 은행의 정체성을 ‘IT회사’에 두고 변환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어떤 은행은 수장이 1주에 한 번 IT현업부서로 출근을 하고, 어떤 은행에선 직원의 고정석을 없애고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IT와 현업부서원이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디지털 노마드’를 실행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런 환경을 지적하기 위해 ‘디지털을 위한 디지털은 답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지 한 달이 넘은 듯하다. 디지털이 목적처럼 보여지는 세태를 지적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모두가 디지털을 만병통치약처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기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자고 말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사람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이야기한 허인 KB국민은행장의 메시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디지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고 각종 금융프로세스도 디지털 플랫폼에 탑재되겠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주체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