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계획서대로 운용 안하다 부실 방치
상환 불가능 상태서 외부에 손실 떠넘겨
“사모펀드 감독사각지대…제도개선 필요”

<대한금융신문=박영준·강신애 기자>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이 펀드 운영에 부실을 드러냈다.

위험성 높은 사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고도 ‘깡통’이 될 때까지 회사의 내부통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펀드청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펀드와 전혀 상관없는 외부 자산가의 돈을 빌려 상환만 끝내놓고, 손실만 떠넘기려는 정황도 발생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펀드 운영부실 외부 전가

현대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A씨는 지난 2016년 3월 유류유통 전문회사인 에너지세븐을 주요 투자대상으로 하는 채권형 펀드인 ‘현대인베스트먼트 유류유통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1호’를 만들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총 130억원 규모로 만기는 2년이었다. 

펀드 만기인 지난해 3월 이후에는 5곳의 벤처캐피탈사(VC) 투자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예정과 달리 VC 가운데 한 곳에서 투자 검토를 예정보다 일주일 뒤로 늦추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 펀드의 보유채권 가운데 상당 부분은 투자계획서의 내용과 달리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실채권으로 구성돼 있었다. 만기가 끝나기 전까지 VC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펀드상환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A씨는 평소 연락하고 지내던 자산가 B씨에게 펀드청산을 위한 ‘브릿지론’ 형태의 자금대여를 부탁했다. 펀드 만기와 VC 투자 사이의 보름동안 100억원을 에너지세븐에 빌려주면 2억원의 이자를 지급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B씨는 에너지세븐에 100억원을 송금했고 이는 전액 현대인베스트먼트 펀드상환자금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에도 VC로부터의 자금은 유입되지 않았다. 다급해진 B씨는 에너지세븐의 내부구조를 살펴보니 부실화된 외상채권만 100억원을 웃도는 상태였다. B씨의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현대인베스트먼트도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구멍난 내부통제 

문제는 현대인베스트먼트가 펀드의 부실화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이다. 외부인의 자금이 없었다면 펀드 청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펀드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회사는 부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운용과정에서 기본적인 내부통제나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도 부족했다. 본지가 입수한 현대인베스트먼트 내부 자료에 의하면 문제가 된 사모펀드의 운용기간 동안 컴플라이언스팀이나 준법감시인의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현대인베스트먼트는 에너지세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펀드 설정 이전에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었다. 그 결과 펀드매니저는 매주 5개 주유소를 선정해 △대출한도와 대출잔액 확인 △매출 지속성 여부 △일마감 자료와 자금집행요청서와의 일치성 등을 점검하는 ‘오일점검프로세스’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A씨는 펀드 설정 후 2개월만 표본 주유소를 추출해 정해진 한도 내에서 대출이 실행되는지 관리했고, 이조차 문서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부실 대출이 늘어나도 주유소가 소유한 부동산의 근저당권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에너지세븐 측 설명만 듣고 부실화과정을 지켜봤다.

현대인베스트먼트 내규 상 펀드 운용계획이나 전략 수립 등은 본부장 전결사항이다. 문제가 된 펀드에서 주유소의 신용카드매출채권액을 초과한 대출이 실행됐다면 이는 펀드 운용전략이 변경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베스트먼트는 펀드매니저에게 운용관리 일체를 맡겼다.

현대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일상적인 펀드 운용에 대해서는 펀드매니저가 전결 권한을 갖고 있다. 펀드매니저 A씨는 에너지세븐이 주유소에 신용카드매출채권 잔액을 초과해서 유류자금을 대출해준 것을 별다른 리스크요인으로 보지 않았기에 회사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며 “에너지세븐이 부도가 나거나 회생절차를 신청하지 않는 한 회사가 펀드가 부실화 됐다는 점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투자계획서와 운용 달리해

실제 이 펀드의 보유채권 중 상당 부분은 원래 투자계획서 상의 내용과 달리 회수 가능성이 낮거나 없는 채권으로 구성돼 있었다.

현대인베스트먼트가 작성한 투자제안서 상에는 안정적인 원리금회수를 위한 신용보강 항목이 있다. △신용카드 승인잔액을 한도로 대출을 실행하고 △유류 판매분의 카드매출채권에 대해 채권양도·양수 계약을 맺고 △신탁계좌의 담보비율을 102%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항목은 펀드 운용 기간 내 지켜지지 않았다. 펀드 설정 2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각 주유소에 대한 대출금의 총액이 신용카드매출채권액을 초과한 것이다.

이후 펀드 만기인 지난해 3월에는 신탁계좌의 잔고가 3억7453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에너지세븐의 매출채권 잔액은 명목상 약 132억원이었으나, 이는 부실채권이 포함된 허수였다. 실제 회수 가능한 신용카드매출채권 잔액은 6억4524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이 펀드의 상환자금으로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는 실질자금은 이 둘을 합한 약 10억원이 전부였다. 원금 130억원에도 턱없이 부족한 깡통펀드가 돼 버린 것이다. 

■‘감독사각지대’ 놓인 사모펀드 

사모펀드 운용사의 내부통제에 대해서는 금융감독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사모펀드는 개별 펀드에 따라 운용 전략이 다르고, 위험을 인지한 전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린다는 점에서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왔다.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사모 전문 운영사에 대한 감독이나 규제는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다. 공모펀드와 달리 전문투자자가 대상이기 때문”이라며 “사모펀드에 대한 리스크는 회사 자체의 내부통제 문제”라고 말했다.

B씨는 “외부의 제3자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사실상 펀드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현대인베스트먼트나 금감원은 펀드청산만 이뤄지면 문제없다는 식”이라며 “동일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차원에서도 감독당국의 사모펀드 관리감독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B씨는 펀드매니저 A씨와 에너지세븐 대표 등을 사기죄로 형사 고소한 상황으로, 현재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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